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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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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7-01 14:42 조회2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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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선규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복장을 너무 편하게 하고 왔죠? 죄송합니다. 괜찮으신가요? 별로 안 괜찮은 표정들이시군요. 정말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자리를 역사적인 자리라고 얘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두 기둥, 선생님들과 그리고 어머님들이 함께하는 이런 자리, 앞으로 전 역사가 평가할 거라고 믿습니다. 한번 여쭤볼게요. 텔레비전에서 저 좀 보셨나요? 아, 이쪽 분들만 보셨군요. 안 보셨죠? 이쪽에서는요? 보신 분들은 어떻습니까? 실물보다 텔레비전이 낫습니까? 실물이 낫습니까? 아, 실물이 나아요? 아, 보긴 보셨구나. 그럼 제가 몇 살쯤 돼 보입니까? 50대 초반이요? 네, 맞습니다. 텔레비전보다 낫다고 얘기해 주신 분들 감사하고 텔레비전 안 보신 분들, 뭐 할 수 없죠? 제가 지금까지 굉장히 수준 높은 프로그램들만 해왔기 때문에 안 드신 분들은 못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여쭤볼게요. 저는 1960년생입니다. 1960년도에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나 됐는지 혹시 기억하세요? 얼마쯤 됐을까요? 60년도에. 지금은 얼마쯤 되죠? 지금 엄마들이 관심을 좀 가지셔야 하는데, 지금은 우리 국민소득이 얼마쯤 됩니까? 네. 2만 달러 조금 넘죠. 60년대 얼마나 됐을까요? 250불이요? 60년대 공식 기록에 보면 한 80달러쯤 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살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만큼 살고 있지요? 이만큼 살고 있는 것. 전적으로, 저는 전적으로 교육의 덕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교육의 모든 것을 걸었던 어머님들의 결단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요. 조금 전에 우리 저 운영위원장님께서 소개를 해 주셨는데, 제가 지금 이 모습에 KBS 앵커하고 청와대 대변인도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하고 에드워드 로이스라고, 지금 미국 하원 외교 위원장입니다. 이분 보좌관도 하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물 책임도 하고 그러면 제가 출세 좀 한 건가요? 출세한 건가요? 네. 출세했다고 대답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대답 안 해 주신 분들 더 감사합니다. 대답 안 해 주신 분들이 보기에는 ‘앞으로 더 갈 것 같다.’ 그거죠? 그런데 더 갈 겁니다. 왜요? 더 가야 하는 이유가, 저희 어머님이 그렇게 늘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다 저를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서 ‘만족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서 더 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까지 도달하도록 항상 노력해라.’ 그게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선생님들, 저희 어머님이 주신 가장 귀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어머님들의 한 말씀, 한 말씀, 선생님들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정말 평범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마음들을 한번 새겼으면 좋겠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의 자리가 제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좀 편안하게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제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정부 추진 실무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삼 수 끝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했죠? 자축연을 하고 뭐 이런저런 행사를 하고 기자들이 저한테 묻습니다. 박선규 차관께 하나 묻겠습니다. 박선규 차관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계획이 있다면 뭡니까? 제가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첫째, 2018년까지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 돌파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 2018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자기 돈 내고 자기 시간 들여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세 배쯤 늘었으면 좋겠다. 세 번째, 2018년까지 자기 돈 내고 공연장 찾아가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문화 인구가 세 배쯤 늘었으면 좋겠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이 비로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돈만 가지고 안 되고 문화만 가지고 안 되고 자원봉사가 결합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계신 어머님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른 아침에 샤프론의 이름으로 자원봉사자의 이름으로 이렇게 모이시는 모습.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 아내도 조금 전에 가셨습니다. 강성률 교감 선생님. 저는 아이가 셋입니다. 셋인데, 아시죠? 짐작하시죠? 딸, 딸, 아들. 딸, 딸, 아들이 다 강성률 선생님이 계신 선유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막내는 지금 그 학교에 있고. 제 아내가 토요일마다 샤프론 봉사한다고 갈 때 별로 제가 눈여겨보질 않았는데 오늘 보니까 대단한 조직이네요. 네. 굉장히 의미 있고 감사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그냥 쭉 한번 좀 드려볼게요. 여러분, 아이들 잘 키우기 원하시죠? 그렇죠? 제가 누구처럼 아니면, 아마 박선규처럼 키우시면 그래도 괜찮을 거예요. 박선규처럼 키우시면 괜찮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키우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여러분들하고 같이 좀 잠깐 나누고 싶습니다. 엊그제 우리 동부전선에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죠? 네. 전역을 3개월 앞둔 병장이, 젊은 청년이 동료들을 총기로 쏴 죽이고 탈영해서 본인도 자살을 기도해서 충격에 빠진 사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몇 가지 관점에서 그 사건이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근무했던 바로 그 부대입니다. 그리고 그 부대고 제가 전역하기, 제가 지금 전역한 지 30년 좀 됐는데, 딱 30년 전에 그 비슷한 사건이 거기서 또 한번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들께서 어떻게 보셨나?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로 큰 걱정을 했습니다. 무슨 걱정을 했느냐? 아, 이런 일이 앞으로 더 있을지 모르겠다. 더 있을지 모르겠다. 왜요? 왜 제가 더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을까요? 옛날에는요. 군대 이등병, 일등병, 상병, 병장쯤 되면 병장은 소대장, 중대장 하고도 안 바꾼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왜요? 그만큼 자기 절제력이 강하고 그만큼 부대 내에서 구석구석을 메워주면서 부대를 이끌어 가는 정말로 든든한 기둥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병장입니다. 그런데 엊그제 그 사건을 보면서는 전역을 3개월밖에 남겨놓지 않은 저 친구가 집에서 너무 귀하게 곱게 자란 것 같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 오기 전에 세상에서 생활할 때 친구들하고 마음 터놓고 어울리지를 못했구나. 그리고 이제까지 주어지는 환경에 충실하긴 했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 또 내 앞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데 대한 생각과 그런 것들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을 훈련받지 못했구나. 그러고 나서 그 짐작을 하고 제가 신문 통계를 보니까 국방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니까, 그 부대, 전방부대 5%가 관심 사병이라고 합니다. 5%라고 하는 숫자는 제가 볼 때는 굉장히 적게 잡은 숫자일 겁니다. 관심 사병이 뭐냐 하면, 저도 철책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적응을 잘 못 해서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있는 사병을 관심 사병이라고 그럽니다. 저도 사실은 관심 사병이었습니다. 저는 뭐였느냐 하면, 5공화국 때 녹화사업이라고 하는 대학생들의 이른바 그때는 ‘데모’라고 그랬죠. 데모하다 강제로 징집이 됐기 때문에 저도 관심 사병이었어요. 저 친구는 까딱하면 북한으로 넘어갈지 모른다. 그래서 철책에는 보내질 않았었습니다. 제 중대장께서 마침 ‘이 친구는 내가 보장한다.’해서 데리고 들어가셨기 때문에 그랬지만, 관심 사병이란 종류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그러면 관심 사병의 종류는 집안에 무슨 급격하게 일이 생긴 경우, 그리고 가정 형편이 굉장히 어려워서 집안 걱정을 하느라고 군대 생활을 제대로 못 할 경우, 거기에 하나가 또 마지막으로 추가가 됩니다. 뭐냐? 최근에 여자 친구와 문제가 생긴 경우. 관심 사병입니다. 그때는 관심 사병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보이면 내려 보내고 내려 보내고. 그런데 5%를 지금 관심 사병으로 두고 있다고 하는 얘기는 다른 말로 하면, 그런 친구들까지 동원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경계 근무를 할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이 약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댁에서 애지중지 기르시는 아드님이, 따님이, 내 아들이 군대 가서 북한군하고 마주치는 그 상황 속에서, 한 30명 생활하는 소대원들하고 갈등을 빚게 될 때, 생활 못 할 때, 우리 아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저는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더라도 적응하지 못해서 정말로 위축돼서 군대가 인생의 하나의 낙오자로 전환되는 변곡점이 되거나, 아니면 굉장히 괴로운 시기로 아이들의 머릿속에 작용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합니다. 저는 그 GOP 참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 정말 이제 30년 넘게 대한민국이 풍요를 누리면서 귀하고, 귀하고, 귀하게 키운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아픈 현실이, 이제 이렇게 드러나고 있구나. 제 생각은 그랬습니다. 어머님들께서도 생각을 한번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문제로 보지 마시고 아, 저래서 우리 아이는 절대 군대 보내선 안 되겠구나. 그  결심하지 마시고 저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를 견디게 할 수 있는, 이겨 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만 하신다면 군대는 아이가 두 단계, 세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굉장히 귀한 교육의 기관이 되고 훈련의 기관이 됩니다. 

 

 여러분 지금 방송기자들 다 괜찮게 생각하시죠? 그렇죠? 가령 제가 87년에 KBS 기자가 됐습니다. KBS 기자될 때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눈빛을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8명 뽑는데 한 2,500명이 모였습니다. 한 2,500명 모였는데, 그래서 ‘그때보다 지금은 더 어렵다.’ 그럽니다. 요즘에 방송기자가 되려면 몇 가지를 갖춰야 돼요. 공부 굉장히 잘해야 돼요. 공부 잘하려면 집안이 괜찮아야 돼요. 집안이 괜찮으려면 부모가 물려받은 게 많아야 되고 돈이 많이 있어요. 또 하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인물이 잘나야 돼요. 저 보시면 아시잖아요. 인물이 잘나야 돼요. 방송기자 하려면 그렇게 여러 가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부터 한 7, 8년쯤 전입니다. 제가 이름만 대면 아는 방송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신입 기자들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잘 생긴 친구가 방송기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되면 제일 먼저 시키는 일이 두 가지를 시킵니다. 매일 새벽 경찰서를 돌아라. 마활이라 그럽니다. 일본 용어가 있습니다. 경찰서 두 군데를 갑니다. 형사계하고 수사계를 갑니다. 형사계를 가면 간밤에 있었던 사건, 사고가 다 집결이 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확인합니다. 수사계를 가면 경찰이 언론에 알리고 싶지 않고 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감춰놓고 싶었던 사건들이 책상 위에 올라옵니다. 밤에. 그거 가서 같이 뒤져보고 사건을 챙깁니다. 그리고 또 가야 하는 데가 있습니다. 병원에 갑니다. 두 군데 갑니다. 응급실에 갑니다. 응급실에 가면 간밤에 치고 박고 심각한 사고가 있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응급실로 실려 옵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두 번째 영안실을 갑니다. 영안실에 가면 간밤에 죽은 사람들이 여기 다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사건기자 초기에는 경찰서와 병원, 두 군데를 들르는 게 일인데 생각해 보세요. 공부만 열심히 한 친구들이 거기 가라고 하면 쉽겠습니까? 경찰서 가라고 할 때 제일 먼저 뭘 시키느냐 하면 첫 번째 들어가서 서장 방을 발로 빵 차고 들어가라. 이렇게 시킵니다. 왜? 기죽지 말라고. 가서 나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 회사, 대한민국의 언론을 대표하는 기자인데 당신 나한테 함부로 하면 안 돼. 기 싸움하라 그럽니다. 그런데 공부 열심히 한 애들 그거 못하죠? 그건 정상적인 방법도 아니죠? 병원 영안실 못 갑니다. 가서 어떻게 시신을 봅니까? 못 봅니다. 그러니 공부는 잘했고 귀하게 칭찬을 받았지만, 기자로서는 0점이죠. 이 친구가 기자가 됐어요. 새벽 4시 반부터 나와서 자기 지역을 돌아요. 병원 돌고 경찰서 돌고. 그리고 6시쯤 자기 일진 선배, 1년 선배입니다. 일진 선배한테 전화를 합니다. 네, 제가 돌아보니까 이런 일이 있었고요. 이런 일이 있었고요. 보고를 합니다. 보고를 하면 일진 기자는 ‘그래, 이거는 기사를 쓰되, 이렇게 쓰고 이렇게 써.’ 그러면 기사를 써서 보고를 해요. 그런데 일진들의 특기는 이진을 괴롭히는 게 특기입니다. 그리고 재미입니다. 그러면 물어보면 그런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이 친구가 이런 거예요. 가봤더니 여학생 하나가 엄마가 와서 막 이렇게 얘기하는데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물어요. ‘무슨 일이래?’ ‘잘 모르겠는데요.’ ‘잘 몰라?’ ‘너 지금까지 뭐했는데?’ 그럼 뭐 얘기를 해요. ‘그러면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 만나봤어? 뭐라고 그래?’ 안 만나봤지요. ‘에이 등신 같은 놈아 너 기자야? 뭐하는 거야 지금? 아침부터 장난하는 거야? 나하고 놀자는 거야?’ 그리고는 막 육두문자가 나와요.  

 

그날도 그런 날이었어요. 이 친구가 그 일진 선배한테 정말로 혼난 거야. ‘나가 죽어 인마. 너 기자 들어오지 마.’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일진은 늘 하는 짓이 그 짓이기 때문에, 그러고는 회사로 한 5시쯤 복귀를 합니다. 그래서 그날 나갈 리포트를 제작을 합니다. 5시쯤 들어갔는데 애가 안 보이는 거예요. 하루 종일 전화도 안 됐어요.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자기도 못 봤대요. 그런데 전화가 온 거예요. 이 친구한테.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누구누구 기자님이시죠?’ ‘네. 전데요.’ ‘네. 저 누구누구 기자 엄마입니다.’ 아침에 그 기자의 엄마였어요. 정황을 보니까 이런 거예요. 애가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혼나 본 적이 없어요. 누구한테 욕을 그렇게 먹어 본 적이 없어요. 그러고는 가슴이 벌렁벌렁한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주체가 안 돼서 습관적으로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엄마 나 이상해.’ 엄마가 목소리 들어보니까 이상하거든요. ‘너 거기 어디야? 꼼짝 말고 있어. 엄마가 바로 갈게. 기다려.’ 택시 잡아타고 갔어요. 갔는데 보니까 애가 정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있는 거예요. 엄마가 보니까 옆에 모텔이 있더래요. 모텔로 데리고 들어간 거예요. ‘아무 소리 하지 마. 우선 자. 푹 자. 자고 나서 엄마랑 얘기해.’ 재웠어요. 재우고 나서 법 먹이고 자초지종을 보니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엄마 나 회사 못 들어가. 나 들어오지 말래. 나 죽인대. 엄마가 대신 전화 좀 해줘.’ 심합니다. 그래서 이게 7, 8년 전 쯤에 방송기자들 사이에 정말로 회자가 됐었어요. 제가 누구라 그러면 여러분이 알 만한 기자입니다. 알 만한 기자입니다.  

 

하나만 여쭤볼게요. 어머니들이 많으니까. 이런 친구 사윗감으로 어떠세요? 할 수 없지요? 미치죠? 인물 잘났죠? 집안 잘났죠? 직장 괜찮죠? 사람 착하죠? 겉으로 보면 얼마나 멋있어요? 그런데 한 단계만 더 들어가 보니까 이게 엄마 없이는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마마보이 중에서 마마보이죠? 그 작은 충격 하나도 스스로 흡수할 수 없는 정말로 경직된 아이죠? 자기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제가 아주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예라고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극단적인 예는 아닙니다. 이런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어머님들께서 어쩌면 그런 아이들을 키우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이런 아이들 키우자는 것 아니잖아요? 이런 아이들 키우자는 것 아니잖아요? 제가 22사단 그 참극을 저질렀던 젊은 병사를 보면서 이게 얘만의 문제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거는 바로 우리가 오늘 기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갖게 되는 생각입니다. 제가 2001년도, 2002년도 미국 하원의원 에드워드 로이스라고 하는 분의 보좌관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외교위원장이 돼 있죠. 저한테 참 고마운 분이죠. 많이 가르쳐 주기도 하셨고. 특별히 그분이 제 의견을 받아서 탈북자 문제를 제기해 주셨고 지금은 탈북자들의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는 데 큰 몫을 하신 분입니다. 아세요? 제가 KBS 기자할 때 특종을 많이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탈북자 문제입니다. 94년 2월에 중국에 숨어 살고 있는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의 존재를 세상으로 가장 먼저 끌어내서 복에 겨운 상도 받았고 미국 가서 다큐멘터리 관련해서 특별상도 받았고 참 복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탈북자들하고 약속을 했던 게 있어요. 여러분을 위한 여론을 만드는 데 내 모든 것 걸겠다. 아까 제가 소식지를 보니까 탈북자들하고 장보기한 소식들이 몇 개 있더라고요. 그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분들 제 취재를 거부했고 취재를 거부하는 분들에게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아무것도 없었고 약속을 했어요. 여러분 위험부담을 첫째는 지금 대학교 다니고 있는데 지방에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러면요, 지방대학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차관이 하면 바라보는 직원들의 얼굴이 행복해져요. 굉장히 행복해져요. 그러고 나서 한마디 씩 해요. 저는 사실은 이야기를 안 하려 그랬는데 제 딸내미도 지방대학 다닙니다. 동료들끼리도 창피해서 그 이야기를 못한대요. 그게 왜 창피해요? 엄마, 아빠가 아이들의 문제를 창피해 하면 그 아이들은 가서 어떻게 살라고요? 그때는 우리 아이 학교 선생님하기 전입니다. 그러고는 그렇게 합니다. 그 직원들에게 소개를 하게 해서 작게는 한 5~6명, 많게는 한 스물다섯 명 정도까지 식사를 같이 해요. Case By Case로. 그때 교장선생님들 참고 하십시오. 자기소개를 하게 해서 식사가 끝날 즈음에 제가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다 기억해서 이야기를 해 주는 겁니다. 아, 누구 씨. 누구 씨. 누구 씨. 그러면 그 분들 굉장히 좋아해요. 경악하죠. 그런데 제가 이름을 기억 못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렇죠? 그럼 이름을 기억 못 하는 사람들은 밥값은 자기가 내야 돼요. 왜? 못 외운 내 잘못이 아니라 각인시키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기 때문에. 물론 제가 어떻게 다 외우겠습니까, 제 보좌관이 옆에서 써 줍니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이름을 외워서 불러준다고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본인들이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거든요. 엄마, 아빠들, 여기 교장선생님들은 제가 또 말씀을 드릴 필요 없겠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아이들의 눈을 맞춰 주면은 아이들이 존중 받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다고, 내 기대에 차지 않는다고, 내가 조금 속상한 게 있다고 내 아이들을 내가 인정하지 않고 조금 낮은 단계로 내 몰을 때 그게 관심 사병이 되는 거예요. 그 아이들이 약해져서 존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의 대표적인 경향은 자신감이 없는 겁니다.  

 

제 아내하고 제 이야기를 드렸는데 비슷한 과정에 있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반대의 경우 하나 이야기 해 드릴까요. 이것도 한 7~8년쯤 된 일입니다.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아버지하고 지리산 등산을 갔다가 아버지를 놓쳤어요. 아버지는 아이가 따라 오지 않는 것도 모르고 휘어, 휘어 앞으로 가다가 나중에 보니까는 아이가 없어요. 찾아봤더니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아이를 잃었습니다, 산에서. 그런데 그 밤에 비가 내렸습니다, 산에. 수색대를 동원해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찾았지만 못 찾았어요. 이튿날도 새벽부터 아이를 찾았지만 아이를 찾을 수 없었어요. 지리산이 얼마나 넓습니까? 얼마나 큽니까? 아이는 아이대로 헤맸죠. 아, 정말로 큰일 났구나. 이제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구나. 다 포기하고 절망하고 엄마는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이를 지리산에서 찾아 헤맬 때 셋째 날 오전에 전화가 걸려온 거예요. 아빠한테. 아빠, 나야. 아이가 지나가는 등산객의 전화기를 빌려서 아빠에게 전화를 한 겁니다. 상황을 따라가 보니까 이런 겁니다. 아빠를 따라가다가 이 녀석은 딴 짓 하다가 이제 아빠를 놓친 거예요. 아빠를 놓쳤는데 아빠는 보이지 않고 자기가 아빠를 찾긴 찾아야 되겠는데 어디 가야 할지 모르겠고 자기 나름대로 헤매다가 산에서 이제 하룻밤을 보내게 됐는데 비가 왔다는 거예요. 기자가 아이한테 묻습니다. 아니, 비 오는데 밤에 어떻게 왔어? 춥지 않았어? 이 아이의 대답입니다. 우리 아빠가요, 비 올 때 비 맞으면 체온이 떨어져서 죽는다 그래서요. 바위 밑에 가서 침낭 덮고 그냥 조용히 있었어요. 아니, 산이 이렇게 깊은데 무섭지 않았어? 우리 아빠가요, 우리나라 산에는 맹수가 없다고 이야기 해 주셔서 무섭진 않았어요. 배고팠을 거 아냐? 우리 아빠가요, 배고파도 산에 있는 풀들 뭐 이런 거는 독이 있는 게 있기 때문에 먹지 말라 그래서요, 계곡에 가서 물 마셨어요. 아빠가 아이를 평소에 그렇게 가르친 이 가르침 덕분에 아이가 살아난 겁니다. 그렇지요. 아빠가 이 침낭을 덮었고 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아이가 자기의 배낭을 졌다는 이야기겠죠. 그렇죠? 아이에게 힘들다고 아빠가 다 짊어질게, 넌 일로 와 몸만 가. 이러지 않았고요.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 몫을 지게 했고, 아마도 아빠 나 힘들어. 좀 쉬었으면 좋겠어. 그랬을 때 아빠는 미안하다. 조금만 더 가면 저기 약수터 있으니까 거기까지 가자. 조금 더 가서 쉬자. 독려했을 것이고요. 그리고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겠죠. 혹시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너 이렇게 해야 된다. 산은 이런 거야. 이렇게 해야 돼. 아빠의 교육이 아이를 살린 겁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강남 8학군의 기자하고 이 초등학교 4학년, 지리산에서 실종됐던 4학년하고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엄마, 아빠가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겁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아이들을 살릴 겁니까? 죽일 겁니까?  

 

통계를 보니까, 미국의 통계입니다. 사람이 10년에 한번 씩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세상을 뜨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심각한 어떤 상처를 받거나. 10년쯤 한번. 교육이라는 건요. 평상시에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목적은 생존능력을 길러주는 거예요. 어떨 때? 위기의 상황에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 아빠가 챙겨주지 못하더라도 자기 몸을 건사하고 내 동생, 내 약한 친구를 도와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게 교육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나갈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교육의 목적이에요. 이제는 목적을 한번 되 새겨 보셔야 돼요. 내가 아이를 생존능력을 길러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생존능력을 죽이고 있는 것인지. 얼마 전에 중앙일보에서 의미 있는 심층보도가 나왔습니다. 뭐냐 하면 나이 들어서 양로원으로, 노인 복지 시설로 쫓겨나는 엄마, 아빠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식교육에 올인 하느라고 가진 재산 다 쏟아 붓고 가진 재산 중에 유산으로 나누어 주고 그리하면 아이들이 잘 챙겨줄 줄 알았는데 보니까는 서로 외면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슬픈 현실. 여러분 아세요? 사람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그 아이들이 왜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지 아세요? 독해서? 악해서? 저는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뭐냐 하면 이제까지 자라나면서 받는 것만 배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는 것을 한 번도 훈련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몸에 익숙한 대로 젖어 가게 돼 있어요. 제 아내하고 결혼 초기에 부딪쳤던 일 중에 교육 문제가 있었지만 또 하나가 있었습니다. 저는 결혼기념일 때 아이들에게 반드시 선물을 받습니다. 반드시. 자기들이 돈이 없다 그러면 제가 돈을 빌려줍니다. 제 아내가 처음에 그래요. 사람이 왜 그렇게 쫀쫀하냐고. 아이들을 왜 그렇게 괴롭히느냐고. 제가 그랬어요. 여보, 괴롭히는 게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에게 자기들의 귀한 걸 드려서 고마움을 갚아 주는 훈련을 해야 이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 당신, 나 무시하지 않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으로 남을 도와본 사람이 남들이 자기를 도와줄 때 이것이 얼마나 귀한 지 알 수 있게 돼 있어. 딴 소리 하지 마. 그래서 지금까지 결혼기념일에는 선물이 옵니다. 몇 년 지나니까 자기들끼리 이제 합의를 해요. 엄마, 아빠한테 사전조사를 해요. 뭘 갖고 싶은지. 그래서 자기들끼리 나눠요. 넥타이도 하고, 엄마 스카프도 하고, 케이크도 하고. 여러분 당장 오늘부터 가셔서 그렇게 안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게 여러분들의 노후를 위한 길이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길입니다.  

 

여러분이 샤프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귀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남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귀하지만 더 귀한 게 뭔지 아세요?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는 겁니다. 우리 엄마가 우리 학교에 와서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구나. 우리 엄마 멋있다. 우리 엄마 괜찮은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이것이 귀합니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 자기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경험하게 해 주는 겁니다. 경험 중에 하나는 볼 수 있게 해 주는 거예요. 여러분 들어오실 때 더불어 꿈이라고 하는 브로슈어 하나 씩 받으셨죠? 안 받으신 분은 나가실 때 가져가세요. 제가 하고 있는 사단법인이에요.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제가 아까 어렵게 밀가루 배급 받으면서 자랐다 그랬어요. 어떻게 제가 여기까지 왔겠어요, 혼자. 선생님들이 도와주셨죠. 그리고 이웃들이 도와주셨죠. 물론 가장 중심에는 저의 어머니의 기도가 있습니다. 서른한 살에 혼자 되셔서 4남매를 키우신 저희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가 있습니다. 그때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그때 제가 그렇게 자라서 대한민국 정부의 차관까지 했다면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되겠다. 그래서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지금 고민합니다. 저의 홈페이지에 한번 씩 들어와 보세요. 지난달에 아이들 20명을 캄보디아에 보냈어요. 자기 돈 내고 비행기 탈 수 없는 아이들. 일주일 동안 봉사활동을 시켰어요, Siem Reap에서. 아침 9시에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밥 배식 준비해요. 500명 배식합니다. 끝나고 설거지 합니다. 설거지 끝나면 옷도 못 입고 신발도 못 신고 있는 아이들 머리를 감겨줍니다. 우리 아이들이 거기서 처음으로 이를 본 거예요, 이. 이가 뭔지, 석해가 뭔지 알 길이 없는 아이들이 아이들의 이를 잡아줍니다. 석해를 잡아 줍니다. 그러고는 거리에 나가서 지저분한 거리, Siem Reap 가 보신 분들 많죠? 그 수상 가옥들 있고 한 데. 쓰레기가 썩어가도 치우지 않는. 쓰레기를 치웁니다. 그리고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하고 놀아줍니다. 이런 생활을 엿새하고, 닷새하고 마지막 오기 전 날 Angkor Wat하고 Killing Field흔적이 있는 그곳의 유적지를 방문해서 오게 합니다. 매일, 매일 일기를 쓰게 했습니다. 매일, 매일. 저의 홈페이지에 오늘 들어가셔서 한번 아이들 캄보디아 일기를 한번 보세요.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못 살까.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 이랬던 아이들이 180도 달라집니다. 아, 나는 정말 복 받은 아이였구나. 내가 너무 복에 겨워서 엄마, 아빠에게 너무 험하게 대했구나. 이 아이들은 밥 한 끼 먹으려고 7Km, 8Km를 걸어와서 옷도 못 입고 있는데도 저렇게 얼굴이 천사처럼 밝고 항상 웃는데 왜 나는 그랬을까. 그리고 아이들이 밥을 주면요, 3분의 1은 자기들이 먹고 3분의 2는 비닐봉지에 담습니다. 그걸 다시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들이 천사를 보는 것 같았대요. 아이들이 하나도 예외 없이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을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앞으로 기회가 되면 와서 장기로 봉사를 하고 싶다. 어머니 중에 한 분이 아들하고 그런 카톡을 주고받은 그 카톡을 저한테 캡쳐를 해서 보냈어요. 우리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봉사의 기쁨을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기쁨을 확인하게 된 거예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괜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 거예요. 아이들에게 그걸 알게 해 주셔야 돼요. 거기다 하나 제가 더 얻은 게 있습니다. Angkor Wat를 보여주고 Killing Field를 보여준 이유는, 여러분 Angkor Wat가 지금도 전 세계 불가사의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엄청난 건축물 아닙니까? 저게 언제 만들어진지 아세요? 12세기 초반에 만들어 졌습니다. 12세기 초반에는 이 한반도에 어느 왕조가 있었을까요? 고려왕조가 있었습니다. 우리 목조건물 가지고 이런 저런 것들 만들어갈 때,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 있을 때 우리하고는 완전히 다른 스케일로 지금의 과학,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한참이 걸린다는 저런 건축물을 지은 사람들의 후손들이 지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가장 비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지금 한 7~80달러 됩니다. 조금 더 넘습니다. 그리고 6. 25전쟁 때 우리를 도와줬던, 캄보디아가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저렇게 비참하게 사는 걸 보면서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 전쟁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같이 자기들 눈으로 봤으면 좋겠다. 기대를 가졌어요. 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아이들이 다 깨닫고 왔어요. 중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한 번씩 시켜주세요. 1년에 두 번씩 제가 캄보디아에 보내거든요. 저의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캄보디아 보낸다 그러면 무조건 아이들 신청해서 보내세요. 저희 교육 선생님들 두 분 따라 보내고 현지에 있는 분 들이 아이들 잘 Care합니다. 무조건 보내세요. 다음 달에는 중국에 아이들을 보냅니다. 중국에 전 세계 백여 개 나라에서 청소년들이 다 모입니다. 청춘캠프라는 걸 합니다. 스물일곱 명을 보냈는데 열흘 동안 자기들끼리 캠프생활을 하면서 중국 문화를 배우고, 중국 역사를 배우고 자기들끼리 눈을 넓혀요. 제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보내요. 첫째, 스마트폰 poorly, 게임 poorly, 부모님 poorly. 부모님 없는 곳에서 스마트폰 없이 한 열흘 생활 해 봐라. 엄마들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요. 두 번째, 단체 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좀 이겨봐라. 세 번째, 중국이란 나라.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 나라 사람들을, 그 나라를 좀 엿봐라. 또 하나, 전 세계에서 온 또래 아이들과 교류하면서 눈을 좀 키워라. 이것도 200% 만족입니다. 중학교 2학년, 3학년 아이들이 자기들 수준에서 영어로 대화를 해요. 역시 일기를 매일 쓰게 합니다. 그래서 책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네 꿈을 펼쳐. 라는 책입니다. 파는 책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그 때 썼던 기록들을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책을 만들었어요. 왜요? 이거 가지고 간직하고 이들이 힘들 때 꺼내보면서 아, 그 때 이런 일이 있었지. 그 꿈을 바로 잡고 갔으면 좋겠다. 책 필요하신 분들은 이야기를 하세요. 그리고 내년도 되면 여러분도 아이를 같이 보내세요. 다음 달에 스물일곱 명을 보냅니다. 이번에 돈 별로 안 들어가요. 장사하는 것 같죠? 아닙니다. 작년에 아이들, 작년에 2주 보냈어요. 2주 보냈는데 제가 65만 원 가지고 보냈어요. 왜요? 중국 정부에서 다 해줍니다. 중국 정부가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번에는 광저우도 하자 그랬는데 제가 못했어요. 광저우도 35명을 보내서 광저우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 그랬는데 제가 못했어요. 왜냐하면 제 일손이 닿지를 않아서. 우리 직원들이 몇 되지 않기 때문에. 자꾸 보내서 보여주세요. 넓게 해 주세요. 캄보디아 이야기를 드리고 제가 이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니까 가세요. 저는 교육과 훈련을 구분합니다. 교육은 무언지 아세요? 교육은 모르는 것 가르쳐 주는 게 교육입니다. 교육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최고수준이에요. 어머니들의 교육수준이 대한민국 어머니들만 한 전 세계에 어떤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이요? 게임 안 됩니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교육수준이 제일 높아요. 어머니들뿐인가요.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우리 상인 여러분. 심지어는 노숙인들 까지도 텔레비전 보고 신문 봐서 정치가 어떤지, 경제가 어떤지, 교육이 어떤지 문제를 다 알아요. 대한민국 다 알아요. 교육에 관한 데는 최고인데 이것이 생활로 나타나지를 못해요. 왜?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훈련은 뭐냐? 교육받은 것을 몸에 배게 해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이 행동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훈련입니다. 마치 우리 이영표 선수 잘 알죠? 이번에 해설 족집게처럼 맞췄다고 화제가 됐죠? 이영표 선수가 헛다리 페인팅이라는 걸 합니다. 공 찰 때 보셨죠? 그 헛다리 페인팅을 하면 사람들이 다 상대방 선수가 속을 거라는 걸 예상을 해요. 그러나 그 훈련과 훈련을 거듭해서 몸에 익지 않게 되면 우스꽝스러운 춤추는, 아마 김흥국의 아싸 호랑나비 정도 될 거예요. 자기가 자빠질 겁니다. 몸에 익혀야 돼요. 미국에 있을 때 제 아이 막내가, 지금 선유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다섯 살이었어요. Preschool이라고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9.11 테러가 난지 얼마 안 된 다음에요. 갔는데 유치원에 소방관들이 와 가지고 공개수업을 하는 거예요. 소방차도 동원됐고 아이들에게 소방장비도 보여주고 다 이제 끝났어요. 끝나고 아이들이 갈 시간이 된 거예요. 갈 시간이 되니까 사내아이가 하나 딱 일어나서 먼저 나가더라고요. 나가더니 문을 딱 잡고 서요. 문을 잡고 서니까 여자 아이들부터 나가요.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Lady first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Lady first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녀석이 집에서 외출할 때가 되면 제일 먼저 나가서 뭘 딱 잡고 서요. 자기 누나들이 나가요. 자기 누나들은 thank you는 안 해요. 왜 thank you 안 해? 처음에는 그걸 몰랐어요. 유치원에 가서 공개수업 한 번 받아보고 알았어요. 그게 훈련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엄마, 아빠한테 고마워해야 된다. 어려운 사람 도와야 된다. 입으로 백 번하는 거 소용없어요. 몸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줘야 돼요. 훈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결혼기념일에 선물 받으시고, 생일선물 받으시고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셔야 돼요. 여기 교장선생님들 계신데 요즘에 스승의 날이 되면 여러 가지 촌지 문제, 무슨 문제, 문제가 많다고 스승의 날 학교 문을 닫는 학교들이 많습니다. 제가 개탄을 했어요. 여기 교상선생님들 가운데에서도 교장 연수 때 저한테 강의를 들으신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교장 연수, 선생님 연수라 그러면 제가 무슨 일 있어도 달려갔어요. 심지어 청와대 대변인 바쁜 시절에도 달려갔어요. 왜? 들려주고 싶은 말씀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해도 그랬어요. 스승의 날 문을 닫는데요. 선생님들이 자존심 상해서 못하겠대요. 제가 선생님들께 그랬어요. 그러지 마십시오. 문 여십시오. 그리고 당당하게 요구하십시오. 나 너희들에게 선물 받고 싶다. 나 너희들에게 가르쳐주는 거 고맙다는 이야기 듣고 싶다. 이야기 하십시오. 대신에 선물의 종류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 마음을 편지에 담아서 나한테 편지로 보내라.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편지로 써서 편지로 보내라. 그리고 그 편지에 짧게라도 답신을 다 해주십시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귀찮다고, 오해 받는다고 문을 딱 닫아버리면 아이들이 고마워 할 줄도 몰라요. 선생님하고의 관계가 그냥 기계적인 관계가 되는 거예요. 나 가르치는 사람. 나는 의무적으로 배우는 사람. 요즘의 아이들은 영악해서요. 어디까지 생각 하냐 하면 선생님은 우리 아니면 월급 못 받아. 이런 생각까지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쳐서, 그런 아이들이 자라나서 여러분의 가정을 맡는다면, 우리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나간다면 이만한 불행이 어디 있냐 그거예요. 

 

 어머니들이 똑똑해 지셔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무섭도록 똑똑해 지셔야 돼요. 여러분 잘 아시는 스티브 잡스가 돌아가셨죠? 여러분 좋아 하실 거예요. 스탠포드 대학에 가서 강연하는 것이 지금 인터넷에 많이 돌고 있습니다. 한번 텔레비전을 보세요. 세 파트로 나누어집니다. 그 중에 한 파트입니다. 대학생들이 하는 이야기에요. Your time is limited. 여러분의 시간은 지극히 제한 돼 있다.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그 짧은 인생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사느라고 허비하지 마라. Don't be trapped by dogma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s thinking.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뭐냐. 다른 사람들의 삶이 뭐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마치 자기 것처럼 착각해서 거기에 얹혀서 살지 말라 그거예요. 남이 이야기하면 이리 쫙 흔들렸다가, 남이 이야기하면 저리 쫙 흔들렸다가 누가 뭐라고 하면 왔다, 갔다 줏대 없이. 사회에 나가는 대학생들에게 주는 경고에요.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제일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누가 이야기 한마디 하면 쫙 쏠려갑니다.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청문회가 진행되지 못하는 모습을 저는 보면서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대한민국이 정말 큰일 났구나. 원칙과 목적은 바로 세워서 청문회에서 잘못했으면 거기서 아웃시키면 되고 잘했으면 거기서 보게 되면 되고. 여기서 한마디 하면 쫙 쏠려가고 저기서 한마디 하는 쪽은 나쁜 놈. 죽일 놈. 그랬다가 나중에 MBC에서 테이프 다 들은 거 보니까 그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뭐야? 자기들이 헷갈려가지고요. 엄마들이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아까 이제 저를 새누리당 영등포 지역 책임자라고 소개를 해 주셨는데 그 이야기는 사실은 안 했으면 했어요. 왜냐하면 정치인 그러면 엄마들이 벌써 보는 눈빛이 달라져요. 제가 제일 가슴 아픕니다. 저도 그런 정치를 한번 바꿔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왔는데 정치가 이렇게 경원되는 풍토에 대해서 속상해요. 사람들이 저한테 묻습니다. 왜 정치를 합니까? 당신 방송 때 좋아했고. 멋졌고. 나 당신 팬인데 왜 그 시궁창에 들어갔냐고. 옛날에는 길게 설명을 했어요. 누군가 고쳐야 될 것 아니냐. 그러면 다 한마디 씩 또 해요. 그렇게 고친다고 들어가서 다 똑같아 지는 것 여러 차례 봤다. 요즘에는 제가 뭐라 하는지 아세요? 왜 정치하려 그러냐? 대한민국에 똑똑하고 건실하고 국가관도 투철한 젊은이들이 나도 한번 정치 해 보겠다하는 그런 세상 만들어 보고 싶다. 왜요? 정치가 그만큼 중요하니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교육정책에 관한 문제, 교장선생님들의 정년에 관한 문제, 여러분 남편들이 직장에서의 문제, 세금의 문제, 심지어 음식점에 조리의 어떤 위생의 문제. 아주 작은 것까지 다 결정하는 게 정치에요. 그런데 그 정치를 그냥 개판이라고 외면해 버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냐 하면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 가서 모든 결정을 다 내리면 나는 욕을 하면서 쫓아갈 수밖에 없게 돼 있어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굴레 속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면서 개판이다. 나쁜 놈들이다. 속상하다. 그런 사람들 뽑아 놓았잖아요. 이번에 선거의 지역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드립니다. 저는 구청장이 바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요. 지난 4년 동안에 인구가 3만 명 가까이 줄어들었어요. 젊은 엄마, 아빠들이 빠져나갔어요.  

 

무슨 이야기냐?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에요. 대학 진학률이 스물다섯 개 구에서 23등이에요. 이건 충격이죠. 거기다가 상황은 그런데 아이들을, 학생들을 위한 정책은 하나도 없어요.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정책은 많아요. 왜요? 어르신들은 표가 있으니까. 아이들은 표가 없으니까. 그러면 엄마들이 분개해야죠. 이것만 가지고도. 그래서 저는 이 분은 바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거 때가 되니까는 없더라고요. 그것 따져보는 사람 전혀 없어요. 전혀 없이 그냥 또 바람 부는 대로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놓고는 우리 동네 교육환경 개판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고는 우리 문제 있다고 이야기해요. 대통령이 장관, 차관 인사하는 것이 인사권이죠. 그러나 그보다 훨씬 거룩한 인사권이 있습니다. 그 거룩한 인사권은 유권자가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유권자들의 거룩한 인사권입니다. 엄마, 아빠들께서 눈을 부릅떠 주셔야 돼요. 정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을 바로 키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는 겁니다. 제가 이야기를 길게 드렸습니다. 시간 있으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데 오늘 이렇게 만나는 것도 귀합니다. 귀하고요. 그리고 가셔서 아이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세요. 내가 이 녀석들 살 세상을 험한 세상 이길 놈으로 키울 것인지. 엄마, 아빠 없는 세상 남들에게 끌려가고 비참한 생활하는 그런 아이들로 길러낼 것인지. 그리고 방법을 결정하셔야 돼요. 지방대학교 간다고 서운해 하지 마세요. 그러면 박선규 차관 생각하세요. 저희 어머님이 서른한 살에 혼자되셔서 저를 이만큼 키우셨다면 여러분처럼 좋은 환경에 있는 분들은 여러분의 자제를 장관으로 키우시고 국무총리로 키우시고 대통령으로 키우셔도 모자랍니다. UN사무총장 키우시고 IOC총회 의장 키우시고 그렇게 다 키워내실 수 있습니다. 그 Key가 바로 엄마에게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현장에 가서 자꾸 나누어져야 합니다. 밥 먹고 반찬만 이야기하지 마시고 연예인 이야기만 하지 마시고 그래도 연예인들 이야기하는 가운데 한 번쯤은 우리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여기에 대한 고민도 같이 좀 하셔야 됩니다. 마지막 한마디만 말씀드리고 제가 좋아하는 시 하나만 읽어드릴게요. 다 보신 분들이 있을 거예요.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십사 하는 말씀입니다. 언더우드의 기도문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읽어드릴게요.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조금만 더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그런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그런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못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삶, 나의 인생, 그리고 나.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감사를 가르쳐 주시고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르쳐 주시고 그러기 위해서 샤프론 봉사를 하시는 어머님들이 얼마나 귀한 일을 하고 계신지 행복감을 마음껏 느끼시고 그 중에 하나, 오늘 박선규를 만난 것도 참 행복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나중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그때 그 이야기 듣고 우리 아이 학원 잘라서 잘못됐으니 책임져라. 이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 우리아이 달라졌다. 우리 아이 그 말씀 듣고 이렇게 했더니 괜찮다. 아이들 자랑도 좀 같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