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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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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1-14 14:28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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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쪽에서 하겠습니다. 저는 여기가 되게 익숙한 공간인데 아마 여러분들은 고려대학교에 처음 오신 거죠? , 처음은 아니고 이 건물에 처음 오셨을 가능성이 좀 있나요? , 여러 번 오셨어요? , 그러시겠네요. 뭐 하튼 반갑습니다. , 아 저쪽에 스크린이 있네요, 저는 여기 여러 번 왔는데 저 스크린 내린 걸 처음 봤어요. 여기서 주로 이제 행사 많이 했었고요. , 이 참 오늘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 같아서요. 감사드립니다. , 개인적으로는 교육의 궁극은 봉사의 수준까지 올라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이제 어, 교육이 자꾸 이렇게 봉사하기보다는 뭔가 자기가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미 올라가있는 단계에서 이렇게 내려와서 그러니깐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란 표현을 쓰잖아요. 그래서 이미 여러분들이 그걸 실천하고 계신 것 같아서 어, 되게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사실 저도 오늘 이 특강 맡아 달라는 연락 받았을 때 두말없이 승낙했어요. 그러니깐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뭔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신 것에 되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보려고 한 거는 세계화 시대의 교육이라고 하는 거고요. , 뭐 어떻게 쓰면 될까요? 이렇게 쓰면 되나요? 아래쪽에. 이게 왜 안 넘어가지? 이렇게 해야 되나요? 이 방에 시계가 안 달려있죠? 그럼 제 손목시계로 봐야겠네. , 감사합니다. 제가 몇 시까지 하면 되나요? 여러분들 식사도 하셔야 되잖아요? 12시까지 하면 되나요? 아니면 1150분이요? , 1150분에서 55분 사이로 합니다. 제가 다른 건 잘 못하는데 시간은 조금 맞출 수가 있어요. 특히 이제 저 배꼽에 시계가 달려 있잖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그렇게 갑니다. , 오늘 여기 제 전공 먼저 얘기하고 시작할게요. 제 전공은요. 교육학 중에서 그 재미없다는 교육사에요. 아마 교직 과목 들으신 분들 계시면 끔찍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교육사와 교육철학이 제 전공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관심 있는 게 뭔가 하면요? 교육사 중에서 교육이 뭘까?’, 혹은 교육학이 뭘까?’라고 하는 고민에 지금 빠져있어요. 그래서 항상 말이 앞서는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고 그러는데, 제가 정년 하기 전까지의 과제가 교육 학사라고 하는 책을 쓰고 싶어요. 교육 학사라는 책은 예를 들어서 과학사나 수학사나 심리학자나 이런 학문의 가 있잖아요. 교육 학사라는 책이 아직 없어요. 그래서 교육사라는 책은 많은데, 제가 쓰고 싶은 건 교육사가 아니라 교육 학사입니다. 그래서 그 교육 학사 속에는 기본적으로 교육학이 어떤 학문이냐 부터 시작을 해서 교육학의 하위 학문들까지 이제 다 다루고 싶은 건데 사실은 사찰학, 교육사나 교육철학은 제가 잘 아는데, 다른 거 뭐 교육화, 교육 심리 학사 뭐 이렇게 들어가면 좀 어렵긴 합니다. 아무튼 제 관심 영역이 교육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거고, 오늘 보려고 하는 것도 첫 번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데 대체 세계화 시대라는 게 뭘까?’라고 하는 거고, 그럼 뭐 그동안에 교육이라고 하는 활동이 어떻게 변해왔고 지금 우리 시대의 교육은 어느 단계로 가고 있는가라고 하는 거를 저 세 번째 3가지 교육론 국가주의 교육론, 시장 주의 교육론, 공생 주의 교육론이라고 하는 얘기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 얘기의 핵심은 3가지 교육론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실 때 , 우리는 어떤 교육론을 자기 생각을 갖고 있었던가.’라고 하는 일종의 교육지도를 갖고 가시면 돼요. 그러니까 나의 관점은 국가주의였구나. 아니면 나의 관점은 시장 주의였구나.’ 혹은 나의 관점은 공생 주의 교육론이었나?’라는 정도로 이게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이 나는 좀 더 가까웠는가를 그냥 생각해보시면 될 겁니다. 왼쪽 사진은 그리스 시대의 교육 장면이에요. 그리스 시대의 학교가 저렇게 돼있습니다. 건물이 따로 없고요. 악기를 연주한다든가 아니면 스포츠를 한다든가, 하는 것들인데, 그리스 시대 이런 학교 모습이 체육관과 해당되는 걸 김나지움이라고 하는 건 독일에서 지금도 고등학교에 해당되는 거고요. 악기 연주하고 그런 거에. 체육 학교와 음악학교가 그리스 초기에 학교 교육은 전부에요. 체육과 음악에서 나중에 음악에서 가사를 중심으로 한 국어 교육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니까 교육의 출발이죠. 오른 쪽 거는 두들겨 패고 있죠? , 열심히 팹니다. 왜 패느냐. 교육을 안 받으려고 했든가 떠들었든가 등등이죠. 저희 어렸을 때는 저 장면이 낯설지 않았는데 지금은 낯선 풍경이 돼버렸어요. 교육은 패야 된다. 교육은 패는 걸 앞두고 교육이 안 이뤄진다 등등의 그런 시절이 있었죠. 2000년 이상 서양 교육에서 주된 관점은 이겁니다. ‘인간이 주인공이냐아니면 인간은 전체 속에 부분이냐이거 관점 2가지예요. 하나는 플라톤적 사유이고 하나는 소피스트들의 사유예요. 사람들이 소피스트들에서 갖고 있는 오해 중의 하나가 소피스트들은 궤변 철학자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소피스트란 말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지혜의 스승이고요. 소피스트들은 당시에 출세하는데 도구가 되는 지식을 정보를 가르쳐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출세하려면 소피스트들에 가서 돈 내고 배웠고요. 플라톤은, 플라톤은 아카데미라고 하는 학교를 만들긴 했는데 이게 그렇게 뭐 출세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보다는 여기는 철인이라고 하는 국가 지도자 양성이라고 하는 소수의 교육입니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자유 시민들은 소피스트들의 교육을 받았다고 보고 플라톤의 교육은 아주 제한적인 소수였을 수도 있는 그런, 어쨌거나 아이디어 자체는 이 2가지예요. 하나는 세계의 주인공이 인간이고, 하나는 세계는 인간은 세계의 일부분이라고 하는 건데 소피스트들의 생각이 인본주의적이고 소크라테스 아니, 뭐 플라톤이라든가 뭐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국가라고 하는 전체 속에서 교육이 어떻게 작용할 것이냐고 하는 쪽이 좀 더 관심을 갖고 있었죠. 뭐 밑에 내용 읽어보시면 고민이죠. ‘인간을 현실적 삶의 주인공이라고 볼 것인가아니면 인간은 삶의 주인공은 아니고 삶 속에 어느 한 객체라고 볼 것인가이런 고민이죠. 동양적 사유에서는 인간의 소우주고 전체 우주는 대우주고 그래서 인간이 곧 인내 천이라고 하는 발상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서양 사고는 인간이 중심이냐’, ‘인간이 부분이냐라고 하는 이 둘 중의 하나 선택지가 있어요. 이런 얘기죠. 인간 중심, 자연 중심 그러면 떠오르는 교육가 있나요? 루소 막 떠오르지 않아요? 인간 중심, 자연 중심 그러면 벌써 낭만주. 그런데 한 쪽은 국가 중심, 신 중심. 그리니까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 작용할 것이냐아니면 나의 하고 싶은 걸 할 것이냐요 갈등이잖아요? 학문적 전통의 소피스트는 현실주의고, 플라톤은 이상주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주의고 이런 식의 흐름이 있습니다. 보시면 되죠? 넘어갑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갖고요. 교육이란 무엇인가 네 번짼데 교육을 보는 입장이 국가적으로 입장으로 교육으로 볼 것이냐, 개인적으로 볼 것이냐 물론 이제 제일 좋은 거는 균형, 2가지 조화. 그러면 오늘 얘기 다 끝나요. 오늘 얘기는 뭐 ,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지?’ 그러면 끝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복함을 추구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회의 안정과 성장과 발달과 이 지속 가능성을 찾아갈 수 있을까? 교육이 어떻게 역할을 해야 될까?’ 이 고민입니다. 그리니까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도구로 쓰여 질 것이냐 국가 발전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