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서울포럼 > 강의록


인쇄

등록정보

초청연사 : 국회의원 이재오
포럼일정 : 2011.4.22
포럼장소 : 플라자호텔

 

 

아래 내용은 2.17일 한국시민자원봉사회 민간회원 모임인

세종로포럼 현장 특강 말씀으로 속기록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님

 

 

이른 아침에 한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이른 아침에 오시려면, 더구나 지방에서도 오신 분이 있던데, 새벽같이 일어나셨을 텐데 일찍 일어나신 분들은 지금 딱 졸릴 시간인데 '내가 시간을 잘못 잡았나…….' (웃음)

방금 심익섭 교수님께서 제 소개를 하셨는데 대충 맞는데, 딱 정말로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습니다. 그게 이재오는 아주 촌놈이라는 겁니다. 촌놈 중에도 아주 촌놈이라는 것이 빠졌습니다. 태생이 촌놈이라기 보다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주 촌스럽게 살아왔다. 세련되게 살았으면 제 팔자가 많이 피었을 텐데 아주 촌스럽게 살다 보니까 팔자가 꼬여 갖고 지금 이 팔자가 되었다는 것을 다음부터는 꼭 말씀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촌에서 경북 영양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양가가 있는 고등학교다.' 어떤 사람은 '영양가가 아주 없는 고등학교다.'라고 하는 촌에서 6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촌이다 보니까 대학은 엄두도 못 내죠. 저 뿐 아니라 대학을 간 학생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행히 고등학교 다닐 때 촌에서 4H운동, 농촌계몽운동을 많이 해서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바로 영양군청 서기로 특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63년에 군청 서기를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심훈의 상록수 이런 것을 주로 읽었으니까 농촌운동을 하는 것이 제 생각이었고 그래서 도시에 대한 동경 이런 것은 처음부터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청 서기가 되어서 농촌에 들어가서 같이 생활을 직접 해 보니까 고등학교 다닐 때의 계몽운동과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어서 해 보니까. 우선 제가 아는 것이 아주 적다.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농민들이 '쟤는 학생이니까' 이렇게 해서 몰라도 넘어가고 그랬는데. 그래도 명색이 군청 서기인데, 그때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청 서기되면 엄청 출세한 것입니다. 시골의 신랑감 1순위입니다. 그런데 군청 서기가 되어서 보니 눈이 달랐습니다. '아, 공무원이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되니까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해 가을에 군청을 그만 두고 대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농촌에 돌아와도 배우고 돌아와야지 안 그러면 사기꾼 비슷하게 되겠구나, 모르는데도 아는 척해야 하고 공무원이라고 폼도 잡고 하다보면 반 사기꾼 비슷하게 되겠구나. 그래서 알아야 되겠다.' 해서 64년에 서울에 있는 중앙대학교를 갔는데. 그때 중앙대학교 상과대학인가 경상대학 안에 아마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저처럼 시골에서 돈도 없고 그나마 공부는 좀 하고 졸업하고 농촌운동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위해서 농촌사회개발학과를 중앙대학교에 설치를 했습니다. 입학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는 4년 동안 장학금을 주고 졸업과 동시에 농촌지도소 직원으로 채용하는 그런 국책학과가 생겼습니다. 제 조건에는 딱 맞는 과니까 그래서 몇 달 동안 공부를 해서 중앙대학교에 4년 장학생으로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우수한 성적으로. (웃음).

그게 내 팔자를 꼬이게 만들었고 내 신세를 조지게 만들었습니다. 촌놈이 촌에서 살았으면 유지 대접받고 촌에서 이일 저일 간섭하고 촌장으로 지낼 텐데, 대학간 게 아주 잘못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그게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3월 3일에 입학식을 했는데 3월 24일부터 한일회담반대 데모가 일어난 겁니다. 입학 20일 만에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촌사람들이 구경하는 거, 남 일에 끼는 거, 나서는 거 좋아하고, 아는 체하는 거 좋아합니다. 남대문 가본 사람 보다 안 가본 사람이 똑똑하다고, 촌사람 빗대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들어갔는데 밖에서 데모하니까 시끄러워서 강의실 안에 앉아있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휩쓸려서 입학한지 3개월 만에 계엄령이 내려 졌습니다. 6. 3 사태라고 하는 계엄령이 나서 학교에 군인들이 주둔하고 우리는 방학에 들어가고. 그래서 1학년은 데모 반 공부 반으로 보냈습니다. 1965년 2학년이 되었는데 그때는 64년보다 데모규모가 더 컸습니다. 국회에서 한일회담 비준을 해야 하니까, 반대데모가 일어납니다. 64년에는 그야말로 엉겁결에 했고 65년에는 조직적으로 하고 야당 국회의원들도 한 10여명이 의원직을 던지고 교수님들도 학교를 던지고 사회지식인들도 참여를 하고 해서 비준반대데모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중심에 제가 중앙대학교 비준반대투쟁위원장을 하고 전국 비준대학생연맹도 구성을 해서 그야말로 직업적인 운동가가 된 겁니다. 경찰이 볼 때는 아주 악질 주동자 데모꾼으로 되었고, 학생들이 볼 때는 아주 후한 지도자가 된 거죠. 그해 8월 달에 위수령이 내리면서 학교를 군인들이 또 점령을 합니다. 군사정부 때니까 걸핏하면 총 들고 나오니까 군인들이 학교에 탱크 갖다 대고 교문 닫고 점령하고, 그때는 군인들도 조직적으로 대응해서 주동자를 제적시키고 수배하고 학교 문 닫고, 그렇게 전국적으로 아주 군사작전 하듯이 들어갔죠. 그것으로 일단 제 대학생활은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대학을 들어갈 때는 입학한지 30년 만인 94년에 복학을 해서 입학한지 32년 만에 96년에 졸업을 했으니까 전 세계에서 학적을 가장 오래 보유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학생이죠. 제가 대학에서 제적 당하고 도망을 다니다가 잡혀서 군대를 갔는데, 군에서 3년 동안 생활 하면서 제가 반성을 참 많이 했습니다. 촌놈이 촌놈답게 살아야 하는데 데모에 휩쓸려서, 이게 만약에 전과가 되어서 출세하는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을 하게 된 겁니다. 다시 제대하면 복귀해서 데모근처에도 안 가고 공부 열심히 해서 졸업해서 취직시험이라도 봐서 장가도 가고 부모에게 효도도 하고 그래야 되겠다고 원래의 선량한 촌놈으로 돌아간 겁니다. 원래 본색으로 돌아가서, 그 생각을 하면서 3년 동안 군대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간혹 보안사나 헌병대에서 와서 '이 일병 잘 있어?' 그러면 '예, 잘 있습니다.' '너 반성 많이 했어? '예, 반성 아주 아주 많이 했습니다. 절대로 데모 안합니다.' 그랬는데……. 제가 또 반성을 하게 된 계기는 도시 사람들에 대한 불신때문이었습니다. 아주 깊었습니다. 왜냐하면 데모를 하잖아요. 그러면 앞에 나서서 우리가 왜 데모를 해야 하고 왜 이 정부가 나쁜 정부냐고 선동하는 사람들은 주로 도시학생들이에요. 공부 잘 하고 서울, 대전 등 수도권 학생들인데, 그런데 막상 그날 저녁에 하루 종일 데모하고 줄줄이 잡혀서 경찰서 유치장에 가 보면 도시학생은 한 사람도 없고 전부 촌놈들만 오글오글, 전라도 무주에서 온 놈, 경상도 충청도도 저 바닷가 당진, 서산 강원도 고성 속초 촌놈들만 앉아서 하는 소리가 '도시새끼들 못 믿겠다, 이 새끼들 데모는 하자 그래 놓고 한 놈도 잡히지는 않고 우리만 만날 잡히고' 그런 신세한탄을 했습니다.

촌스럽게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며 제대를 하고, 그야말로 경찰서 정보계에서 볼 때는 개과천선했다. 새 사람이 되었다. 만날 데모만 하던 놈이 말씨도 달라지고, 학교 다닐 때는 경찰을 보면 눈빛이 달라졌는데 눈빛도 고분고분하고 아주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나는 당연히 복학될 것으로 생각하고 복학원서를 냈는데 느닷없이 학교에서 'NO'하는 겁니다. 복학이 안 된다는 겁니다. 나는 꿈에도 생각을 안 한 거죠. 왜냐하면 앞에 같이 데모 하다가 제적 되어서 먼저 잡힌 학생들은 68년도 말에 제대를 하고 다 복학을 했는데 69년 봄 학기에 복학하려는 학생들은 복학이 안 된 겁니다. 정말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노랗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앞이 캄캄한 것은 나갈 길이 없다는 거죠. 복학해서 공부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할 계획이었는데 무산이 되니까 앞이 캄캄하죠. '왜 안 되냐'고 물어봤습니다. '3년 동안 군대 가서 반성도 많이 하고 왔는데 왜 안 되냐'고 따지니까 학교에서 하는 말이 '상부 지침인데 곧 3선개헌을 이 정부가 하는 것 같다. 박 정권이 3선개헌을 하려고 하는데 3선개헌을 하면 데모주동학생들이 틀림없이 3선개헌 반대데모를 주동할 거니까 아예 학교에 복교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는 겁니다. 그때 제가 처음으로 분노를 느꼈습니다. '아니 무슨 권력이 무슨 정부가 자기네들이 3선 개헌한다고 장기집권하려고 선량한 대학생 3년 동안 군에 갔다 온 학생을 복교 안 시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때 의식이 처음 생겼습니다.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이, 개인의 가치관이라는 것이 부당한 권력 앞에서는 소용이 없구나. 이 부당한 권력이 자기들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개인의 장래를, 개인의 희망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짓밟는구나. 내가 인간답게 살려면 먼저 이 부정한 권력을 정의로운 권력으로 바꾸어야 되겠다.' 는 의식이 생긴 겁니다. 복교가 급한 것이 아니고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싸우는 것이 급하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길로 말하자면 민주화 운동에 들어선 겁니다. 들어서서 제가 박 정권 때 세 번, 전 정권 때 한 번, 노태우 정권 때 한 번, 다섯 번에 걸쳐서 약 10년 반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감옥에서 나오면 제대로 살았느냐? 감옥에서 나오면, 걸핏하면 군인들이 총 들고 나오듯이, 걸핏하면 수배 내리죠. 연금 시키죠. 조금 시끄러우면 유치장에 잡아가서 며칠씩 넣죠. 그런 수배 연금 생활을 한 7년 가까이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젊은 시절 다 끝나고, 그 가운데 한때 아까 교사 시절을 소개 해주셨는데, 10월 유신이 나고 제가 민주수호청년협의회 회장할 때인데, 모든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유신헌법을 비판하면 잡아가고, 딱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사회가 그야말로 암흑한 시기에 들어섰죠. 민주화운동을 할 수 없으니까 서울에 있는 장훈고등학교에 전과를 속이고 국어선생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계십니다. 그때 제가 거짓말하고 들어간 거 죄송합니다. 지금 사과드립니다. 그 학교에서 계속 있었으면 좋은데 2월에 들어갔는데 그해 10월에 또 10월유신 반대데모 배후 조종 내란음모 이래서 수업 하다가, 수업시간에 잡혀갔습니다. 그길로 해서 계속 들락날락 했죠. 말하자면 군사정권이 끝나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서 지난 일을 불문에 부치고 연한에 관계없이 해줘서, 94년에 복학해서 96년에 국회의원 되던 해에 졸업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기 때문에 신한국당 말기에 15대 국회 신한국당으로 서울 은평구에 공천을 주어서 그래서 제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15대, 16대, 17대 국회의원을 서울 은평구에서 했습니다.

제가 그 젊은 시절 긴 세월을 감옥 살고 도망 다니면서 막연하나마 가치관과 철학이 자연히 형성이 되었습니다. '우선 나라가 권력이 좀 정의로운, 그런 나라 그런 권력이 되어야 되겠다. 국가가 정의롭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진다. 돈이 많거나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지 모르겠지만, 돈도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항상 피해만 본다. 그러니 권력이 정의로워야 되겠다.' 저는 정치범으로 잡혀 갔습니다. 감옥이 사회 축소판이고 아주 제일 밑바닥이잖아요. 그런데 살아보면 권력이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가를 몸소 느끼게 됩니다. 꼭 죄 지은 사람들만이 잡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데 안 가봐서 잘 모르시겠지만, 괜찮은 곳입니다. 거기 가면 밥걱정은 안 합니다. 절대로 굶어죽을 걱정 안 합니다. 비오나 눈 오나 걱정 없습니다. 세 끼 밥 주죠. 잠자리 걱정 안 합니다. 어디 가서 잘까 걱정 안 합니다. 또 만났다고 하면 판검사만 만나잖아요. 얼마나 우아합니까? 또 어디 간다고 하면 관용차만 타잖아요. 조금 10미터만 걸어가도 경호원들이 두 명 이상 꼭 따라옵니다. 자주 갈 곳은 아니지만 어쩌다 살기 싫을 때는 한 번씩 가 봐도 괜찮습니다. 사회 온갖 것을 다 보잖아요. 모든 것 다 봅니다. 좀도둑부터 살인범, 간첩까지 다 봅니다. 그래서 ‘국가가 좀 정의로워야 되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사회가 좀 공평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진짜 라면 몇 개 훔치고, 돈 백만 원도 안 되는 거 훔치고 들어와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에 보면 몇 십억 몇 백억씩 해 먹고 며칠 동안 요란하게 나는데도 들어왔다 금방 나가거나, 들어오지도 않고 그렇게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죄를 짓는 것만큼 벌도 받아야 되잖아요. 도둑질하기로 말하면 돈 액수가 많으면 죄도 무거워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거꾸로 된단 말입니다. 권력이 있거나 돈 있는 사람들은 죄를 많이 지어도 처벌을 적게 받는 이런 사회는 공평한 사회가 아니잖아요 ? 사회가 공평하지 않으면 자꾸 사회에 대한 저항. 범죄가 재발될 수밖에 없지요. 공평한 사회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뭐냐 ? 왜 사느냐 ? 행복하기 때문에 살죠. 행복하려고 살죠. 그러니까 구두닦이로 살아도 구두 닦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고 만족이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개개인이 행복을 느끼고 살맛이 나잖아요. 직업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행복을 느끼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그런 생각이 몸에 체질적으로 딱 배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하고 도망을 다니고.하면서요.

제가 교회 집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잡사'라고 그러기도 하는데 교회 가면 집사인데. 내가 골치 아프고 도망가면 만날 절에 가서 앉아있습니다. 도망을 매번 절로 다녀서 스님들이 저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생긴 게 중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머리만 깎으면 중이죠. 도망 다닐 때 절에 가서 머리 박박 깎고 승복 입고 앉아있으면 아무리 경찰이 와도 어떻게 잡아갑니까? 당연히 중인줄 알죠. 그런데 지난번에 당에 있을 때 뭔가 일이 잘못 되어서 절에 앉아있는 것이 신문에 나서 우리 교회 목사님한테 혼나고 지난 총선 때 떨어진 계기도 교회 집사라는 게 만날 급하면 절에 가서 앉아 있는 다고 표가 많이 안 나왔을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산이라는 산은 안 다닌 곳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다 다녔습니다. 이름 있는 산은 해발 700~800미터 이상은 다 다녔습니다. 그만큼 제가 산을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에 도망 다닐 일도 많았지만 산을 좋아해서 산을 다니면서 생각 정리한 것이 그겁니다. 국회의원을 세 번을 내리하고 보니까 나는 정치만 하고 국회의원만 하면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을 바로 잡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야당 국회의원 10년 하는 동안에 '전혀 아니올시다.'를 알았습니다. 권력주변에도 부패했고 특히 대통령 주변이 더 부패 했잖아요.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대중 대통령 아들도, 노무현 대통령 형도 그렇고, 어떻게 정권만 잡으면 최고권력 주변의 친인척들이 매일 구설수 오르고 감옥 가고, 권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부패지수도 액수도 크고. 그것은 우리가 민주화 운동 할 때 꿈꿨던 것이 아니잖아요. 군사정권이 정경유착을 해서 재벌을 살렸다 죽였다, 기업을 죽였다 살렸다 권력이 마음대로 하잖아요. 그러면 기업은 돈 갖고 가서 봐달라고 하고, 권력은 또 돈 안 갖다 주는 기업은 망하게 하고 그랬지요. 그런 것들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문민정부가 되었다고 했는데도 그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 젊은 시절에 대한 배신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려고 내가 청춘을 바쳤던가 ?.' 그래서 '내가 야당을 하니까... 야당이라는 것이 말만 있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잖아요. 집권을 해야 되겠다. 정권을 잡아서 제대로 해야지. 정권을 안 잡는 한은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만날 싸움이나 하고 시끄럽게나 하고 동네 나가면 싸움 하지 마라는 소리만 듣고 안 되겠다' 벼르고 별러서 야당 10년 만에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정권을 잡았지요. 비로소 여당이 된 거죠. 한나라당이 여당이 되어서 집권을 했는데, 나는 집권만 하면 내가 국회의원 되는 것은 아주 쉬울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 척박한 동네에서 세 번을 내리 야당 국회의원을 해서 야당 원내대표, 사무총장, 최고위원 다 했지요. 국회의원으로 놓고 보더라도 제가 야당이지만 꽤 괜찮은 국회의원이잖아요. 모범적이라고 해도 틀린 것이 아닐 거예요. 왜 ? 제가 골프를 칠 줄 아나요. 술을 먹고 허랑방탕하나요. 여의도 갔다가 은평구에 들어오면 만날 자전거 타고 다니죠. 또 내가 국회의원 3선 할 동안에 숟가락 하나 안 늘렸고 23평짜리 한옥 지금도 그대로 있죠. 국정감사하면 내가 초선에서 3선까지의 동료의원이 뽑은 최우수 의원, 피감기관이 뽑은 최우수 확인, 시민단체가 뽑은 최우수 국회의원, 심지어는 국회의원회관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뽑은 의원, 그 정도면 훌륭하고 또 세 번 국회의원 할 동안에 스캔들 하나 없었죠. 심지어 주간지에도 한 번 오르지 않았으니 내 정도 되면 괜찮잖아요. 정권도 바뀌었고 여당이 되었으니까, 아무래도 힘도 좀 더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저절로 쉽게 시켜줄줄 알았죠. 그걸 떨어뜨린 사람들이 이상하잖아요. 그 정도 조건이라면 훌륭한데.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나는 국회의원에 딱 떨어졌습니다. 세상이 공평한 건지 불공평한 건지, 세상이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국회의원 떨어지고 나니까 백수가 되었잖아요. 백수가 얼마나 바쁩니까? 여북하면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합니까? 갈 데 많죠. 오라는 곳이 많죠. 어디 전화 걸어서 못 간다고 그러면 백수가 뭐 한다고 시간 없냐고 하면 또 가야 됩니다. 백수가 과로사 하게 생겼으니까 주변에 내 가까운 동료들이 백수를 하더라도 외국 가서 하라고 그래서 제가 미국을 갔습니다. 이것도 팔자에 없는 일입니다. 미국 중에서도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는 워싱턴DC에 갔는데, 가서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제가 영어를 능통하게 잘 하나요. 그냥 몇 마디 알아들을 정도였는데 아는 사람이 있나요. 감옥에 살 때는 만기가 있습니다. 3년이거나 5년이거나 몇 월 며칠 나간다는 만기를 벽에다가 쓰는데, 볼펜이 없으니까 반찬 들어오면 고추장을 나무젓가락에 묻혀서 벽에 날짜를 씁니다. 이게 마르면 그 다음날 고추장 오면 그걸로 또 써놓습니다. 나갈 날짜가 정해졌으니까 그 날짜까지는 살아야 되니까……. 여러분들 안 가봐서 실감이 안 날 겁니다. 날짜가 있으니까 그 날짜까지 살아가려면 시간 계획이 되어야 하니까 공부를 하는 겁니다. 사람 살다 보면 모릅니다. 그런데 가지는 마십시오. 일부러 가지는 마십시오. 갈 데는 아닙니다. 감옥에서 시간을 제일 잘 보내는 공부가 어학 공부입니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그 다음에는 한문공부입니다. 자꾸 외우고 읽고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 안에서 오전에는 일본어, 오후에는 맹자 이렇게 해서 감옥 안에서 사서삼경을 다 떼었습니다. 일본어 중국어는 초보는 가르칠 정도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 잘 갑니다. 시간을 잘 보내려면 뭘 또 공부해야 되느냐? 역사책, 한국사 고대사부터 세계사 그 다음에 문학,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또 무협지 시간 매우 잘 갑니다. 12권짜리 가져오면 이틀이면 끝납니다. 또 운동을 해야 합니다. 제가 나이에 비해 날씬한 편이죠. 하도 감옥에서 운동을 많이 해서 그렇습니다. 운동이라는 것이 내가 사는 곳이 0.75평 독방이니까 손을 머리에 대고 앉았다 섰다 팔굽혀펴기 등을 하는 운동을 합니다. 그러면 3년 받아도 금방 가고 2년 받아도 금방 갑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에 떨어져) 미국에 가니까 일단 만기가 없잖아요. 언제 돌아가야 된다는 정해진 날짜가 없고, 또 누가 언제 돌아오라고 부를지도 막연하고, 그래서 처음에 상당히 황당했는데 존스홉킨스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해줘서 대학원 석박사 학생들 동북아문제와 한국현대사 문제를 가르치게 되었고, 북경대학 국제대학원에서 동북아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외국생활을 1년여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아, 내가 떨어지기를 잘 했구나. 외국에 와서 한국을 보니까 정말 내가……. 만약에 내가 안 떨어졌으면 지금도 여의도에서 만날 싸웠을 텐데 나를 다시 돌아보고 한국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1년 동안 느꼈습니다. 워싱턴에 있으면서, 방학에 워싱턴에만 있으면 미국의 눈으로만 세계를 보고 미국의 눈으로 한국을 보게 되니까, 세계 다른 나라는 어떻게 변하냐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많은 나라를 다녔습니다. 마침 제가 한국을 떠날 때 안 가려고 미적미적 거리니까 제 후배의원들이 돈을 모아서 1년간 14개 항공사가 체인이 되어 있는 월드티켓인가 하는 세계여행권을 한 권 사줬습니다. 1년 동안에 그 티켓만 있으면 14개 항공사가 연결 되어 있는 세계 어느 나라든지 퍼스트클래스로 다닐 수 있는 항공권을 받았습니다. 그게 한 800만원 정도 들 겁니다. 그걸 사 주면서 나에게 미국 가라고 해서 그걸 가지고 갔습니다. 여행비는 싸잖아요. 삼류호텔에서 자고 민박도 하면 되니까. 그래서 제가 우선 미국에 가까운 나라부터 둘러봐야 되겠다해서 캐나다, 남미 멕시코, 쿠바, 파나마, 또 세계에서 제일 작다는 나라 바하마부터 캐리비안 해역 쪽으로 돌아보고 남미로 브라질,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돌아보고 관광여행이 아니라 수학여행이죠. 배낭 메고 노트 갖고 그 나라는 현재 어디까지 와 있으며 그 나라는 지난날 어떻게 살았으며 그 나라에는 미래가 있겠는가. 또 그 나라의 수준과 한국의 수준을 꼼꼼히 적어 가면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러고 다시 워싱턴으로 왔다가 유럽으로 갔습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쪽으로 동유럽 쪽으로 갔다가 다시 프랑스에 와서 인도로 갔다가 중국, 러시아, 몽골, 동남아 쪽으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쪽으로 갔다가 서남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쪽으로 가고, 아프리카는 내란이 나서 못 돌아보고 세계를 죽 돌아봤습니다. 다시 워싱턴에 돌아와서 내가 생각이 정리가 딱 되었습니다. 죽 돌아보고 나면 정리가 되잖아요. 두 가지를 제가 정리를 했습니다.

하나는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한 나라,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나라들, 또 근대국가로 성장한 나라들 약 146개 쯤 됩니다. 그 중에 대한민국이 제일 잘 산다는 것. 우리는 지금 소득 2만불 가깝고 세계경제대국 15위 내외에 들고 또 G20 정상회의까지 유치하는 나라, 또 원전까지 외국에 수출 수주할 수 있고 우리 대통령께서 원체 외교를 잘 하시니까 한번 가면 큰 것 하나씩 가져오죠. 이번에도 핵 정상회의도 갖고 오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 점은 정말 잘 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제가 브릭스라는 네 나라들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그들은 지금 우리 보다 훨씬 못하죠. 그렇지만, 그들 보다 우리가 미래가 있겠느냐 ? 답답한 거죠. 이대로 가서는 어쩌면 여기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주저앉을 수도 있다. 우리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 두 가지 상반 되는 것을 제가 딱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왜 146개 국 중에 이 정도로 잘 사느냐?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이른 아침에 서울 한 가운데 프라자호텔에서 조찬 특강한다고 해서 회비 내고 오셨죠? 자기 밥값 내고 참가할 정도로 수준이 있잖아요. 그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두 가지를 동시에 성공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똑같이 5, 60년대 가난과 헐벗었는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 했을 뿐더러 선진화까지 성공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홍콩, 싱가포르입니다. 그런 나라들은 자원도 없고 인구도 적은데 1인당 국민소득이 4~5만 불입니다. 우리는 그들 나라보다 인구도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5, 60년대 똑같이 가난 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2만 불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진국화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50년도 6. 25 전쟁이 날 때 개인소득이 60 불이었습니다. 60년도에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개인당 76~80불 사이였습니다. 50년 전 홍콩이나 싱가포르도 그 당시에 100불 미만이었는데 지금은 4, 5만 불이 되었지요. 우리는 아직 2만 불에 맴돌고 있고요. 왜 그러냐? 우리 나라는 산업화는 어느 나라보다 성공 했습니다. 5, 60년대 70년대까지 가난. 여러분들 다 뼈저리게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죠. 저희 초등학교 때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 소나무 껍질, 칡뿌리, 안 캐어 먹은 것이 없고, 동네 연기 나는 집이 서너 집 밖에 안 됐죠. 도시에는 또 어땠습니까? 근로자들이 장시간 저임금에 돈 만 오천 원, 만 원, 이렇게 받으면서 구로공단으로 전국 공단으로 가서 일하고, 그 돈 받아서 동생 학비 보태고 시골 부모 돈 보내주고, 총체적으로 가난을 극복하려고 했던 그 시대. 기업은 기업인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공직자는 공직자들대로 가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또 산업화를 성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부모들이 자녀 학교 공부시켜서 출세 시켜야 된다고 부모들이 그야말로 온갖 노력을 해서 자식들 공부 시켰죠. 그런 노력들이 우리나라가 가장 돋보였습니다.

그러면 산업화과정 가운데서 우리가 무엇을 안게 되었느냐 ? 산업화는 성공했는데 남은 것이 뭐냐 ? 그 산업화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부패라는 것이 우리들의 원죄처럼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 지금 어제 오늘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검찰의 부패. 기업하는 사람이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성 상납까지 하는 그런 공직자의 부패죠. 이런 것들이 산업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겁니다. 예를 들어 기업인들이 공사를 하려면 1억짜리 공사를 하려면 2천만 원을 공무원에게 뇌물로 갖다 주고 8천만 원 남지요. 4천만 원은 (일을 내려준) 도급자에게 뜯기고 4천만 원 밖에 안 남으니까, 그걸로 공사를 하려니까, 자연적으로 시멘트도 100포 쓸 것을 50포 쓰고 철근도 적게 쓰고 그러니까 공사가 부실공사가 되잖아요. 그래서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도로도 10년 가야 될 것이 3년 만에 걸레조각 되고, 그 피해를 국민들이 떠안고, 그렇게 하더라도 4천만 원 공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래야 인부들 밥 먹고 살고, 공사장밥집 식당 아줌마 먹고 살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 약값. 자녀 학비도 보내고, 기업인들도 4천만 원 가지고 공사라도 해야 단 몇 만 원쯤 남겨서 재투자해서 공사 더 큰 것 따내고. 그런 기업인들의 아픔과 근로자들의 아픔이 산업화 시대에 있었죠. 그것도 부족하니까 독일에 광부, 간호사로도 가고 월남에도 가고 했습니다. 그러면 공직자들의 그때 봉급이 어땠습니까? 70년대 초 제가 고교 교사로 3만3천 원인가 받았습니다. 교사봉급 괜찮다고 했다고 했는데 그래요. 2, 3만원 그 돈 갖고 부모님 봉양, 자식 공부시켜야 하고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봉급 외의 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생계형 비리입니다. 주민등록 등본 한 장 떼는 데도 급행료 몇 천원 받아야 되고 호적등본 하나 떼는 것도 아침에 떼주어도 될 걸 저녁에 오라고 그러고, 급행료 먼저 주면 갖다 주고. 허가와 인가가 있는 모든 곳, 규제가 있는 모든 곳은 돈거래가 있는 겁니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거래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출판사 하나 한다고 광화문 바닥에 사무실 하나 얻어 놓으면 제일 먼저 경찰이 와서 '내가 이 지역 담당 순경입니다.' 그러면 한 달에 몇 만 원씩 받아갑니다. 소방서, 위생과, 심지어 대공 보안실까지 옵니다. 교통순경 하면 좋은 보직 받으려고 위에 돈 갖다 줘. 단속한다 면서 면허증 하고 돈하고 같이 받으면 면허증 돌려주고 돈은 가져가고, 그래서 교통순경 1년 하면 집 한 채 지은다고 했었죠. 세무감사 나가면 3억쯤 벌금이 나올걸. 3억 정도 내야 되지 않겠나? 그러면 조그마한 중소기업 사장은 '아이고 3억 내느니 한 2천만 원 먼저 갖다 주고 한 1억쯤 내면 되겠지' 그래도 돈이 남잖아요? 3억 내는 것보다는. 그러니까 인가, 허가, 공직자 규제가 있는 곳, 공직 과가 있는 곳에는 다 규제 하나씩 거머쥐고 앉아서 부정부패와 연관되어 있었죠. 그것이 하나의 관례 관습 미덕처럼 된 거예요. 중앙부서의 공무원이 지방 내려가면 의례껏 자기 출장비 갖고 가는데도 지방공무원이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중앙공무원을 잘 모시는 것처럼 부패와 미풍양속이 구별 되지 않는 산업화 시대를 거쳤고 지금도 그것이 하나의 미덕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이게 지금은 선진화로 나가는 길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그게 지금도 검사파동 같은 것이 생기는 원인이 된 겁니다. 그게 당연한 거지 아, 기업하는 사람들 검사한테 돈 좀 주고 차비 좀 주고 밥, 술 사주는 게 당연한 거지. 하면서 전혀 부패라는 개념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 공사하다 잘못 걸리면 아는 검사니까 좀 봐 주고, 경찰들 유흥업소 단속 나가라고 그러면 단속 나가기 전에 내일 단속 나간다고 먼저 가르쳐 줬다고 매월 돈 갖다 주고. 그렇죠? 제가 거짓말 합니까? 다 있는 말만 합니다.

이것이 公私가 구별이 안 되는 거고, 부패와 미풍양속이 구별이 안 되니까 관례처럼 자리 잡은 겁니다 . 이게 지금은 더 이상 우리 대한민국 발전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내가 지난 2년간 세계를 돌아다녀 보면서, 선진국을 보면서, 이렇게 공사가 구별 안 되는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독일은 선진국이 될 때 어땠습니까? 사무실에서 핸드폰 배터리에 충전한다고 동료가 고발했습니다. '왜 너 사무실 전기를 갖고 개인 배터리를 충전하느냐 ? 이 전기도 우리 국가가 내는 것인데 전기를 도둑질하는 것 아니냐'고 고발해서 파면 됐지요.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길에 그런 진통이 있고 아픔이 있는 겁니다. '왜 사무실 공용전화를 네 집 마누라한테 전화 거느냐? 이 전화료 누가 내냐 ? 이게 다 세금으로 내는 건데 네가 왜 개인이 쓰냐 ?.' 公私가 구별이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이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원죄처럼 산업화는 성공했고 가난은 해결 했는데, 그때 그러한 부패가 원죄처럼 우리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이건 하나의 문화처럼 되어 버린 겁니다. 드러나는 범죄를 아무리 잡아가도 잡아가는 사람이 만날 업자한테 술 밥 얻어먹고 하는데, 잡아 가는 사람의 공권력에 도덕성이 없잖아요. 이것이 산업화과정 부패가 원죄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화과정에 또 하나 원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싸우는 것은 정당합니다. 제가 세 번째 감옥을 갔을 때 중앙정보부 지하 감옥에서 급성맹장이 터졌습니다. 지금 남산의 적십자 건물인데, 지하실에 감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맹장이 터졌는데 이 사람들은 꾀병이라고 수술을 안 해줘서 복막염이 되어서 늘어져 죽으니까 서울구치소 앞에 있는 성신병원에서 수술을 시켰습니다. 중앙정보부 사람들이 지켜보니까 의사가 배를 열고 맹장만 떼어 내고 그 안에 염증 제거를 다 안하고 급히 닫느라고 가제, 실밥, 솜이 배 속에 남아 있는 채로 꿔매서 마무리 지어 버리고, 서울구치소에 집어넣었습니다. 배 속에 몸 안에 이물질이 있으니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 그러니까 곪아서. 겉은 아물고 속은 곪잖아요. 곪아 터져 나오니까 서울구치소 안에서 마취도 없이 수술하기를 12번, 제 이 배를 12번 재수술 했습니다. 흉터가 빨래 줄처럼 되어 있습니다. 간단한 맹장수술 하나 때문에. 제가 그런 시절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3년 동안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려는데, 3선 개헌하려고 복교 안 시켜줘. 맹장 터졌는데 꾀병이라고 수술 안 해줘. 이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입니다. 권력이 도덕성을 갖지 못하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금년이 안중근 의사 100주년입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 일본통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죽인 안중근 의사를 민족의 영웅으로 부르잖아요. 일본사람들이 볼 때는 아니죠. 우리는 왜 그 분을 민족의 영웅으로 보느냐 ? 우리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두목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그렇게 권력이, 도덕성을 갖지 못한 권력이 불신을 받다 보니까, 이것이 오래 지속 되다 보니까 국민들이 지금도 권력은 무조건 불신하는 겁니다. 또 그렇게 불신할 수밖에 없는 예가 자꾸 터지죠. 경찰들이 불법적으로 안마시술소 운영을 한다, 업자와 결탁을 했다, 검찰이 성상납을 받는다는 등 자꾸 터지니까 국민들은 신뢰를 안 합니다. 공권력을 불신하니까 어떤 일이 생깁니까 ? 걸핏하면 쇠파이프 들고 불법시위하고 집단적으로 나오죠. 국민들은 마치 소리만 크면 이기고, 데모도 하면 할수록 잘 하는 것으로 보고,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사람 잡아 가면 잘못 했다고 생각하고, 경찰관 귀싸대기 때리고 잡혀 온 사람이 마치 독립운동 하다 잡혀 온 것처럼 공권력 알기를 우습게 알죠. 그것 뿐입니까 ? 권력의 제일 높은 곳에 줄을 대죠. 술 먹고도 '야 청와대 누구 바꿔 ! 전화 걸어서 옆에 순경 보고, 너 이 새끼 모가지 뗀다고 그러고, 대한민국 국민이 한 다리 걸치면 청와대 직원 모르는 사람 누구 있습니까 ? 청와대라고 하면 또 껌뻑 죽죠. 이것이 오랜 민주화 과정을 거쳐 오면서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지금도 남아 있고, 마치 그것이 당연시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도 부패입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 했는데 그 과정에서 원죄처럼 살아남은 부패가 문화처럼 우리들 속에 남아 있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선진화로 넘어가는데 딱 발목을 잡는 겁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선진화가 되기 어렵습니다. 아까 보신 동영상에서 여실히 증명하잖아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세계적으로 권위적인 여론 조사입니다. 세계 180개국 나라의 청렴도를 조사 했는데 1등에서 20등 안에 드는 나라들, 미국이 19등이죠. 20등 안에 드는 나라들은 대개 개인 소득이 3~5만 불됩니다. 10등 안 나라들은 4, 5만 불되고, 20등 안에 든 나라들은 3, 4만 불됩니다. 이런 나라들은 다 선진국입니다. 선진국은 우선 개인소득이 최소 4만 불 이상 되어야 되고, 국제적으로 청렴도 지수가 대개 20등 안에 들어야 되는데, 20등 안에 들려면 청렴지수가 100점 만점에 77점, 80, 90점 되어야 합니다. 우리보다 못한 나라들, 브릭스라고 떠오르는 브라질, 인도, 차이나(중국), 러시아, 요즘 더 보태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이런 나라들은 자원이 많고 인구가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은 180개국 나라 중에 청렴도 지수가 150, 160, 170등 됩니다. 이런 나라들 국민소득이 대개 5천불 미만입니다. 우리가 1960년대 87불 됐잖아요. 우리가 천불 넘은 것이 70년대 중반이니까 아직도 그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 부패점수가 대개 2, 30점입니다. 그러니까 부패점수가 2, 30점은 개인소득이 천불 미만이고 많아야 오천 불 미만입니다. 개인소득이 3, 4만 불 되는 나라들은 그 나라 청렴지수가 8, 90점 넘습니다. 못 사느냐 잘 사느냐는 사실상 청렴도가 결정합니다. 우리나라는 39등인데 개인소득이 2만 불. 100점 만점에 55점입니다. 우리가 100점 만점에 70점을 넘어야 2만 불을 벗어나서 3, 4만 불로 진입하고 선진국이 되는 겁니다. 반부패 지수가 선진국이 되는 기준이라는 것 입니다. 자원이나 인구로는 선진국 결정을 못 합니다. 중국 인구 13억이고 땅이 넓고 세계 10대 자원국이지만 20점 개인소득이 5천불 미만입니다. 국가의 힘은 컸지만 나라로 본다면 아직도 부패한 나라로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인구야 13억이죠. 남는 인구도 있습니다. 호적에 없는 인구. 우리는 출생하는 대로 호적 올리지만 중국은 하나 밖에 못 올리니까 둘을 낳게 되면 남는 인구가 생깁니다. 족보에 없으니까 인간 취급도 안 하죠. 내가 북경 대학에 있을 때 교수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너희 중국하고 러시아하고 전쟁하면 누가 이기겠냐' 하니까 교수들이 '무슨 소리냐 ? 우리는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하고 전쟁해도 권총 한 방 안 쏘고 이긴다 ! 어떻게 이기냐면 자기네들 남는 인구만 해도 2억인데, 전쟁한다고 그러면 2억을 중국/러시아 국경선에 배치해서, 2억이 전부 포로로 잡혀 간대요. 그러면 러시아는 자기 인구가 2억도 안 되는데, 그 포로 2억을 어떻게 먹이고 살리겠냐고 ? 그러면 저절로 항복 한다는 겁니다. '아이고, 포로 그만 보내라, 항복도 이제 지겹다' 그러면 총 안 쏘고 전쟁에 이긴다는 겁니다. 한때는 인구가 많아서 먹고 살기가 원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인구 때문에 폼 잡죠. 제가 세계를 돌아보니까 작은 나라가 큰 나라 우습게 아는 나라가 딱 두 나라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중국을 우습게 알죠. 더 웃긴 건 북한이 미국을 우습게 안다는 겁니다. 김정일 북한은 한 줌도 안 되는데 미국을 우습게 알죠. 오기 덩어리죠. 좋게 말하면 자존심 덩어리고 그런 나라인데요.

이제 왜 청렴이 중요한지, 산업화 민주화를 성공했지만 부패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제 말을 이해 하셨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박수) 오늘 이 자리 세종로포럼이 바로 그런 청렴의 문화를 확산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에 제가 국민권익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금년을 청렴의 원년으로 선포했습니다.

두 번째 결론으로, 나라만 청렴하면 미래가 있습니까? 나라가 청렴하면 선진국으로 될 수 있습니다. 100년 후에도 이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 ? 그 점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봅니다. 큰 나라를 다녀 보면서 왜 그러냐하면, 여기에서 KTX타고 2, 3시간 안에 부산까지 가죠. 또 호남선 복선 되고 고속철 되면 서울에서 여수까지 3시간 안쪽으로 갑니다. 작은 나라에서 끝에서 끝까지 3시간이면 되는데 더 이상 뻗어나갈 데가 어디 있습니까? 아파트를 바다에 짓겠습니까? 산꼭대기에 짓겠습니까? 뻔 하죠. 그러면 나라의 영토를 넓힐 수밖에 없다. 영토의 개념이 통치권이 미치는 헌법에 말한 그런 영토가 아니라, 문화적 영토 경제적 영토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제문화공통체를 만들어야 내야 하는데, 영토를 넓혀야 합니다. 고속철도를 수출해야 하고 신도시를 수출해야 합니다.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고속철도를 수출해서 부산에서 KTX가 출발해서 두만강, 시베리아, 모스크바, 런던까지 15,000㎞ 정도 됩니다. 달려가고, 그 사이 요소요소에 교포들이 있고, 자원이 있는 곳에 인구 10만 내지 15만의 신도시를 건설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토목기술 아파트 짓는 것은, 분당 일산 보세요. 뚝딱하면 짓습니다. 세계적으로 최고입니다. 그 신도시를 짓고 10, 15만 도시가 만들어지면 한국의 문화적 거점이 만들어 집니다. 또 하나는 부산에서 시작하여, 서울, 평양, 신의주 거쳐 중국 베이징으로 해서 실크로드를 거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넘어서 터키 이스탄불,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KTX 고속철도로 연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노선은 역시 부산에서 시작하여 서울, 평양으로 해서 중국남방으로 동남아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이란, 이라크, 이집트로 해서 모로코, 알제리까지 이게 약 18,000㎞쯤 됩니다. 여기에 KTX 고속철도를 연결하면서 중간 중간에 신도시를 수출하는 겁니다. 이 세 개 라인이 48,000㎞쯤 되고 40개국 70개 도시를 관통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한반도 대한민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고 중심이 되는 거죠.

이렇게 우리의 고속철도와 신도시를 수출해 놓으면 40개국 70여개 정도의 우리의 경제문화 공동체가 만들어 지고, 이 경제문화공동체를 통하여 50년 100년 후에도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일류 국가로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이 형성됩니다. 제가 중국 북경대학에 있으면서 보니까 중국은 우리 돈으로 700조원 정도를 투자하여, 자기들 중국을 한 바퀴 도는 2만 킬로의 고속철도를 계획하고 있고, 수출에도 적극적입니다. 브라질에 우리가 먼저 수출상담을 들어갔는데 중국이 뒤에 들어와 지금 걸려 있습니다. 우리 고속철도 기술은 세계 4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 갖고 눈을 밖으로 뻗을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러시아만 해도 우리돈 520조원 정도를 들여서 2030년대까지 러시아 전역에 고속철도를 깔려고 합니다.

이미 세계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선두주자로 고속철도를 꼽고 있습니다. 이제 땅 파서 고속버스 다니는 고속도로 놓는 것은 촌스러운 일입니다. 매연만 생기고. 우리는 이미 KTX라는 좋은 기술이 있잖아요. 이걸 세계 모든 도시로 연결하고 신도시를 수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이 뭘 믿고 한국의 고속철도와 신도시 수출을 받아들이느냐 ? 우리가 대사를 시켜서 특사를 보내고 작업하면 대한민국 뭘 믿느냐 ? 자원이 있냐 ? 인구가 많냐 ? 뭘 믿느냐 ? 그때 우리가 내밀 자원은, 대한민국은 청렴한 나라이다. 공직자가 깨끗하고 국민들에게 부패 문화가 없다. 대한민국이 한다고 하면 코리아가 고속철을 수출한다면 백번 믿어라 ! 한국 사람들 장난치지 않는다. 기술 갖고 부품 갖고 공사비 갖고 장난 안친다. 믿어라. 그 사람들 도시건설 아파트기술 봐라. 해야 합니다. 우리 보금자리 주택 있죠. 신도시 금방금방 짓습니다. 땅을 공짜로 받으면 2조원이면 짓습니다. 지금 하남시 쪽에 보금자리 주책 10만호 짓는데 8조원 듭니다. 보상비 다 주고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외국 그 넓은 땅에 중국, 러시아, 인도 넓은 땅에, 땅이 남아도는데 여기 신도시 짓겠다고 하면 땅 100년 200년 무상으로 주지요. 건축비만 듭니다. 제가 이 발상을 몽골에서 했습니다. 몽골에 갔더니 몽골정부에서 나 보고, 제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해서 갔더니 기념사진 찍고 참배할 곳이 있다고 해서 몽골 국회의장과 갔더니, 800년 전에 칭기즈칸이 탔다는 말, 말총을 죽 늘어뜨려서 몽골 50개 주의 땅 흙을 5그램씩 모아서 단을 만들어 놓고 단 위에 탔던 말총을 올려놓고 참배를 해야 큰 꿈을 꾸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꿈 다 꿨다고 더 꿀 것 없다고 하니까 아, 그래도 여기는 참배해야 된다고 그래서 칭기즈 칸 말총에 가서 절을 했습니다. 몽골이 어떤 나라입니까 ? 800년 전만 해도 칭기즈 칸이 기마대를 이끌고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천산산맥이 아시아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 너머는 나라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지구가 없는 줄 알았죠. 천산산맥, 알타이 산맥이 한 눈에 보이는 정말 웅장한 산맥이죠. 그걸 칭기즈 칸은 기마대로 중앙아시아를 점령하고 유럽을 점령하고 천산산맥 너머에도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세아 민족에게 알려줬습니다. 세계를 지배 했죠. 세계 3분의 2를 지배 했던 그 나라 몽골이 인구 270만인데 수도에 100만이 살고 소득 천불이 될까 말까 합니다. 몽골이 800년 전에 세계를 재패할 때 그들의 경제문화공동체를 세계 곳곳에 건설했다면 오늘 몽골이 저렇게 안 됐을 것 입니다. 미국에서 들으니, 앞으로 50년 100년 뒤에는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세계 대륙에 40개국 70개 정도의 신도시를 만들면 우리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미래입니다. 그것을 하려면 믿어주는 것이 있어야죠. 우리 대한민국이 뭘 갖고 세계 각국에 내 보이겠느냐 ? 청렴입니다. 대한민국은 청렴하니까 국민, 공직자, 기술자가 청렴하니까 믿어도 된다. 이것이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청렴이 선진국이 되는 국가경쟁력이 됩니다. 청렴이 미래를 건설하는 우리의 자원이고 자산이라는 겁니다. 이 일에 세종로포럼 여러분 자원봉사자들이 동참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  속기록 제작: 디지털영상속기 자원봉사단(안문학 02-876-0161) -  

Posted by 관리자



전체 : 18 ( 1 / 2 페이지) RSS

게시물 목록
번호 이미지 내용
18 국민 참여로 완성하는 정부 3.0

행정자치부 차관 김성렬 / 173회(2016.06.15) 앰버서더호텔(장충동)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제 73회 서울교육포럼 2016.06.15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 ============================================================================================================== 여러분 반갑습니다. 행정자치부 차관 김성렬 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

17 창조경제 시대의 해양수산 정책방향

해양수산부 차관 손재학 / 2014.3.20(103회) 플라자호텔 메이플홀
세종로국정포럼 3. 20. (103회) 창조경제 시대의 해양수산 정책방향 ◈ 손재학 해양수산부 차관 여러분 반갑습니다. 소개를 너무 거창하게 해주시고 또 어깨에 짐을 많이 주신 것 같아서 오늘 체중 좀 늘려서 하루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세종로 국정포럼인데 저는 사실 ...

16 행복 교육의 의미와 실천

서울시교육감 문용린 / 140회(2013. 9. 26) 리버사이드호텔
제140회 서울포럼 특강 (2013. 9. 26 / 리버사이드호텔)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행복교육의 의미와 실천) 여러분들, 이렇게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광역 표기라서 이쪽보고 저쪽보고 해야 되겠네요? 몇 년, 한 2년 전엔가도 한 번 제가 와서 앰버서더 호텔에서 강의를 했던 기억이 ...

15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행복교육

교육부 학교정책관 김영윤 / 2013년 4월 25일 리버사이드호텔
<김영윤 교육부 학교정책관> 반갑습니다. 저도 서울포럼에 매번, 매번 참여는 못했지만, 가끔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지난해 7월 23일까지는 서울의 수락고등학교 교장이었습니다. 우리 노원지구 오셨나요? 예, 반갑습니다. 제가 교육부에서 17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관님 수를...

14 질 좋은 성장과 희망한국

민주당 최고위원 정세균 / 2011.2.17 플라자호텔
아래 내용은 2.17일 한국시민자원봉사회 민간회원 모임인 세종로포럼 현장 특강 말씀으로 속기록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반갑습니다. 운영위원장님께서 소개를 정말 잘 해 주셔서 거기에 걸맞은 말씀을 드려야 될 텐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이름이 정세균입니다. 어...

13 세계속의 한국

국회의원 이재오 / 2011.4.22 플라자호텔
아래 내용은 2.17일 한국시민자원봉사회 민간회원 모임인 세종로포럼 현장 특강 말씀으로 속기록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님 이른 아침에 한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이른 아침에 오시려면, 더구나 지방에서도 오신 분이 있던데...

12 녹색성장을 위한 미래발전

녹색성장기획단 단장 주형환 / 2011.11.24(목) (제118회) 앰버서더호텔
○ 녹색성장위원회 기획단장 주형환 (녹색성장을 통한 미래 발전) ...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성장 모델의 필요성인데요. 1979년 무렵에 제2차 오일쇼크가 한번 일어났습니다. 제1차 오일쇼크는 1974년에 일어났는데, 그때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명한 석유 장관이 ...

11 창의인재로 여는 미래 대한민국

교과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 이규석 / 2011. 3. 24(목) (제110회) 엠버서더호텔
강의록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10 학부모들을 위한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의 좋은 정보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 원장 김인아 / 2011. 2. 24 (제109회) 앰버서더호텔
◈ 김인아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 원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정보원장 김인아입니다. 아침에 이렇게 여러분들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가슴이 벅찹니다. 109회 서울포럼이에요. 109회면 몇 년입니까? 1년에 12번씩, 거의 10년 가까...

9 공무원 채용방법

행정안전부 인사실장 서필언 / 2011. 1. 27 (제108회) 엠버서더호텔
◈ 서필언 행정안전부 인사실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행정안전부 인사실장입니다. 저는 오늘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서울포럼이라는 이런 조직을 듣고 있었습니다만 실제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처음이고 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

8 서울교육의 방향

서울특별시교육감 곽노현 / 2010. 9. 30 (제104회) 엠버서더호텔
특강 : 곽노현 서울특별시교육감 제104회 (10. 9. 30) 주제 :서울교육의 방향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이른 새벽에 이렇게 근사한 장소에 나와 본 것도 처음이지만 또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은 정말 처음입니다. 제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느지막이 일어나서 점심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

7 중국의 부상과 대한민국의 대응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석동연 / 2010. 5. 27 (제100회) 엠버서더호텔
특강 : 석동연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제100회 (10. 5. 27) 주제 : 중국의 부상과 대한민국의 대응 제가 두 달 전에 이 모임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때 박희권 대사가 아주 좋은 강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뭔가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

6 창의인성교육만이 학생들의 성공을 보장한다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 이규석 / 2010. 4. 22 (99회) 엠버서더호텔
특강 : 이규석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 본부장 제99회 (10. 4. 22) 주제 : 창의인성교육만이 학생들의 성공을 보장한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특히 제가 서울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서울고등학교에도 학부모 봉사단이 있었습니다. 봉사단이 설립 된지 얼마 안 되어 열의는 많으신...

5 글로벌시대의 성공전략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박희권 / 2010. 3. 25 (제98회) 엠버서더호텔
특강 : 박희권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제98회 (10. 3. 25) 주제 : 글로벌시대의 성공전략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아침에 놀라온 것이 참 여러분들이 부지런한 것 같습니다. 여기 조찬 장에 7시면 그때 모이기 시작해서 대충 7시 30분 정도 되어야 자리가 정돈 되는데 7시에 제가 들어오자...

4 인재대국을 향한 국가전략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이주호 / 2009. 5. 28 (제88회) 엠버서더호텔
88회 강의속기록은 강사의 요청에 의해 게재하지 않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처음 작성

처음페이지 12 마지막페이지


위원회 ㅣ 중앙샤프론강사단 리더십캠프교육위원회 샤프론위원회(2017) 생명사랑위원회
135-878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104길 17 대모빌딩4 | TEL.02-2663-4163 | FAX.02-2663-4177 | kcivo@hanmail.net
(강남구 삼성동 149-29 대모빌딩 4층)

copyrights 2010 Korea Society of Civil Volunteer all rights reserved